지금 나와 함께 하는 내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에 늘 감사한다. 은근히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데, 요즘은 그런 의미에서 참 행복하다. 덕분에 마음이 늘 조용한 밤바다마냥 평화롭다. 그 바다에 가끔 태풍이 휘몰아칠 때도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아주 날씨가 좋다, 대체로 맑음. 근데 오늘은 좀 피곤하니까, 스트레스도 풀 겸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 잔잔한 바다에 분노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말 속에 뼈를 담아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법인데. 신기하게도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이게 그들은 습관이다, 모든 말과 행동에 어떤 의도(선한 의도가 아닌 못된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것 말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삶이 황폐화 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도, ‘이 사람의 진짜 의도는 뭘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 정말 재밌는 사실은,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대개 <사람은 믿을 게 못된다>라는 철학(?)을 가진 분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아마 전세계가 서로 의심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소름.
자신의 못된 의도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데도, 아닌 척 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엄청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고, 또 그런 척을 하는데, 정말 그건 ‘척’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라, 결국은 모든 게 다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특징이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기 어필에 이용한다.
안타깝게도 그 의도들이 너무나 훤히 드러나서 주변 사람들이 그걸 알면서도 그냥 대충 구색 맞춰주는 것 뿐인데, 그 사람만 그걸 모른다. 자기의 계획(?)이 성공한 줄 안다. 이들은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줄 아는데, 사실 입으로도 불러재끼는 분들이다. 중요한 건, 그게 팩트가 아니라는 것.
틈만 나면 거짓말, 변명에, 하는 척 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꼭 한 번은 마주치는 유형이다. 진짜 열받는 건, 이런 유형은 주로 여우같은 것(사람이라는 표현도 쓰고 싶지 않다)들이라, 해놓고도 하지 않은 것처럼, 혹은 반대로 하지 않고도 한 것처럼 어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나름의 위대한 ‘능력’쯤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특징은 또 그걸 스스럼없이 본인들 입으로 자랑(?)을 한다는 것. <이런 게 다 사회생활이다>라는 멘트를 입에 달고 산다. 다 된 밥상에 자긴 숟가락도 아닌 이쑤시개 하나 올려놓고 마치 쉐프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래, 그것도 어찌보면 능력이다, 몰매를 부르는 능력.
이외에도 고요한 나의 세계를 뒤집어놓는 빌런들은 정말 많지만, 그 중 최악의 유형들을 꼽자면 저렇게 셋. 심지어 저 셋이 함께 존재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 때의 내 삶은 아주 스펙타클 그 자체였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때문에 그 시절의 나는 늘 분노에 가득차 있었고, 바다가 마르다 못해 용암이 분출해 드글드글 끓고 있었다. 그래서 조그만 생채기에도 격하게 아파했고, 실제로 그렇게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다치지 않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워놓았었다. 지금은 아주 순한 곰(차마 토끼 이런 거라고 말을 못하겠다)이지만, 그 때는 언제든 불을 뿜을 준비가 되어있는 용이었다.

돌이켜봤을 때, 한 가지 좋았던 건, 그 시절에는 감정이 흘러넘쳐서 글을 쓸 거리가 항상 차고 넘쳤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이 생각 저 생각, 물음표를 끊임없이 던져대느라 바빴는데, 요즘은 너무 평온한 나머지 물음표가 없다. 그래서 내 글도 자꾸 그 조용한 바다 위에 동동 떠다니는 나룻배마냥 딱딱해진다. 화가 가득했던 그 때는, 속에서 끓어넘치는 용암 덕에 모든 것이 말랑말랑했는데.
요즘 그 때 썼던 글들을 읽으면서 분노 없이 생각과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연습을 한다. 편안한 상태에서도 폭발하는 감정을 담아 글을 쓸 수 있는 연습. 내 마음의 바다 근처에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를 하나 들여놓으려고 하는 중이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최대한 맞대응하지 않는 것이 상책.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를 늘 마음에 새기고 거리를 둔다. 예전엔 요령이 없어서, 그냥 그들이 쏟아내는 검은 아우라를 그대로 뒤집어 쓰고 괴로워 했는데, 요즘은 재빨리 등을 돌려 멀찌감치 떨어진다. 그들과 동화 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고치려는 생각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니 절대 하지 말기를.
혹시나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한다면, 그들 앞에서는 절대 흥분하면 안된다. 내가 감정적으로 그들에게 동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원하는 것이니, 최대한 차분하게,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 순발력이 좋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 앞에서 말을 아껴라. 이것저것 말해봤자, 그들에겐 그냥 좋은 먹잇감처럼 보일 뿐이다. 교통방송 듣는다고 생각하고 귀와 입을 최소한으로 열도록. 그게 우리가 그들과 공존(?)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들이 우리와 공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날테지만, 우리는 그들 보다 나은 사람들이니 우리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거둔다고 생각하자. 그들을 보며 분노보다는 연민을 가지는 걸 연습하면 어느 순간 내 삶이 조금 나아져있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자, 오늘은 이걸로 충분히 열을 냈으니, 다음엔 내 마음을 선덕선덕,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어볼까 한다.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한 날 적어보도록 하겠다. 구름 위에 동동 떠 있는 내 마음을, 그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간만의 출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오늘이었다.
어서어서 꿈나라에 가야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게 언제, 어디서가 되었건,
내 꿈 속 같은 편안한 시간이 되기를.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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