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심, 그게 살짝 부족한 느낌이라 아쉽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손원평 작가님도 그러했기에(물론,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 내 느낌일 뿐) 더 아쉽게 느껴졌다. 다소 판타지 같은 결말, 대신 찝찝한 느낌이 없어 그것만큼은 좋았다. 하지만 나는 맨 첫 장면, 육교 난간에 몸을 아슬아슬하게 기댄 채 차를 향해 침을 떨어뜨리는(뱉는다고 하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다, 고작 여섯살) 그 때의 윤재가 좋았는 걸. 더 자세한 감상은 다음에, 나의 후기에서.
<아몬드> 손원평 지음, 창비 출판사 _ 2부 필사 먼저 읽으러 가기 -> https://my-maedi-diary.tistory.com/m/8
<아몬드> 손원평 지음, 창비 출판사 _ 2부 필사
속도감은 여전, 새로운 등장인물 등장. 약간 <운명적 만남으로 인연 잇기> 다소 억지(?) 인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알고 봤더니, 네가 걔였어? 이런 거...) <아몬드> 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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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76페이지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 밖에 냈다.
179페이지
언젠가 공을 들여 ‘愛’를 쓰고 있는 할멈에게 엄마가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짖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182페이지 ~ 183페이지
도라 주변엔 늘 친구들이 있었고 같이 급식을 먹는 무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친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와 집에 가건 누구랑 밥을 먹건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때로는 혼자 다녔다. 그러면서도 왕따를 당하거나 겉돌지 않았다. 그저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아이 같았다.
193페이지
저 멀리 도라가 서 있다. 강한 바람에 머리칼이 왼쪽으로 높이 쏠렸다. 길고 윤이 나고 하나하나가 굵은 실처럼 두꺼운 머리칼이다. 그 애의 걸음이 느려졌고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간격은 점점 좁아졌다. 몇 마디 말을 섞은 적은 있어도 이렇게까지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몇 개 박혀 있고 바람을 피하느라 얇게 뜬 눈엔 속 쌍꺼풀이 져 있다. 그 눈이 나와 마주치자 놀라듯 조금 커졌다.
갑자기, 바람이 목적지를 바꾸었다. 도라의 머리칼이 천천히 방향을 바꿔 반대쪽으로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애의 냄새를 실은 바람이 내 코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맡아 보는 냄새였다. 낙엽 냄새 같기도 하고 봄날 새순의 냄새 같기도 했다. 모든 반대되는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냄새였다.
207페이지
갑자기 그 애는 내 턱 밑에 있었다.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고 그러자 심장이 고동쳤다.
-너, 심장이 빨리 뛴다.
도라가 속삭인다. 도톰한 입술에서 나온 음절들이 하나씩 턱 끝에 닿아 간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 애가 뱉어 낸 호흡이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너 지금 왜 심박 수가 높아진 건지 알아?
-아니.
-내가 너한테 가까이 다가가니까 심장이 기뻐서 박수치는 거야.
4부
224페이지 ~ 225페이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윤 교수는 곤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까? 그랬더라면 그들 부부는 그 애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다. 아줌마는 죄책감에 병이 걸리지도 않았을 거고, 회한 속에 죽지도 않았을 거다. 곤이가 저지른 골치 아픈 짓들도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243페이지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 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다 못 느꼈으면 좋겠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곤이가 웃었다. 물기 어린 웃음을.
245페이지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 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248페이지
톡. 내 얼굴 위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뜨겁다. 델 만큼.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뭔가가 탁, 하고 터졌다. 이상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아니, 밀려드는 게 아니라 밀려 나갔다. 몸속 어딘가에 존재하던 둑이 터졌다. 울컥. 내 안의 무언가가 영원히 부서졌다.
에필로그
259페이지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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