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 수록 기억이 순식간에 휘발되는 것을 느낀다.
사실 그렇게 나이 들지도 않은 내가 이런 소릴하면,
엄마는,
-넌 어린 애가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니?
할테다.
근데 사실 그 말이 듣기 좋아서 자꾸 그런다, ‘어린 애’.
이런 말 듣기 좋아지면 진짜 나이 든 거라던데, 젠장.
여튼,
좋은 영감님이 오셨다가도 어느 순간 휘리릭, 사라진다.
적어 놓지 않으면 날아가버리는데,
나름 또 직장인이랍시고, 그거 잠시 끄적일 시간이 없다.
아주 그럴 듯한 핑계.
더 좋은 소재나 멘트 일수록 휘발성이 강하다.
이건 뭐, 돌아서면 정신이 아득 해진다.
그 느낌이 너무 싫다.
마치 귀하게 얻은 무언가를 손에 넣자마자 잃어버린 느낌.
잃어버린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킹왕짱 제일 좋은 거.
기분이 아주 찝찝하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느낌들을 바로바로 적는 연습.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늘 이렇게 잃어버리고 후회한다.
음, 아주 멍청해.

언젠가 사주를 봤을 때, 내 사주를 봐주시던 분이 그랬다,
-언니는, 언니가 스스로를 볶네, 주변에선 아무도 뭐라고 안하는데, 자기가 자기를 볶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아무도 나한테 매일 글쓰라고도,
떠오른 영감을 적어야만 한다고도,
휘발되는 그 순간을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고도,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나를 이렇게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걸까.
내가 나를 좀 내버려두면,
청개구리 같은 나 자신이 ‘그으래?’ 라면서,
그제야 메모를 시작할테지.
머리에서 복작거리는 생각을 밀어내자.
그러면 영감님께서 좀 편안하니 오래 들어앉아 계시겠지.
방석도 놓아드리고 이불도 좀 깔아드려야겠다.
오래오래 내 집 마냥 좀 계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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