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 무렵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본가엘 가기로 한 날인데, 먼 거리를 가던 도중 아프면 어쩌나, 살짝 걱정이 될 정도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이었다. 아침엔 디카페인 커피와 유산균을 먹었고, 점심엔 1인 보쌈을 주문해 먹었다. 중간중간 간식으로 과자와 딸기를 먹은 게 전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배는 계속 꾸루룩 거렸다.

몸이 부쩍 피곤함과 지침을 호소하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작년이 문제였다. 그 전까지는 피곤해도 그냥 ‘아, 나 좀 피곤하네’였는데 요즘은 ‘아, 나 몸이 망가졌네’라는 생각이 부쩍든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작년, 플러스 올해 초 심하게 다친 발목으로 운동량은 더더욱 줄었고, 지금 몸 상태는 정말 최악이다.
며칠 전 연예인들도 한다는 다이어트 클리닉 센터를 방문해서 상담을 받았는데, 아주 결과가 처참했다. 물론 아주 정확한 수치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했네, 싶은 정도. 살면서 내가 이런 말을, 이런 수치(숫자)를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천성이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딱히 집순이도 아니다. 걷는 걸 워낙 좋아하고, 산책을 사랑해서 더운 날만 아니면 뚜벅뚜벅 잘 걸어다닌다. 빨리 걷기보다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하고, 내 취향과 그날의 날씨에 딱 맞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걸 사랑한다. 내가 대학생 시절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때문. 안 먹고 많이 걸었다. 딱히 애써서 그렇게 했던 게 아니라, 그 땐 그냥 그랬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힐을 신고도 몇 시간을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박혀있을 때에 더욱 확실히 알았다, ‘나는 집순이가 아니구나’ 라는 걸. 서울 자취집이 코딱지 만한 이유도 있겠지마는,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았었더래도, 주기적으로 나가서 햇빛을 봐줘야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난다. 하루종일 집에서 씻지도 않고 누운 채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으면 나중엔 머리가 너무 무겁고 누워있어도 불편하다. 집에 내내 감금되어있던 그 몇 달이 내게는 너무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매일 더부룩했던 날들, 그리고 그 날들이 모여 지금의 저질 체력의 내가 되었다.
너무나 잘 안다. 머리로는 다 안다.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을 조절해야한다는 걸. 세 끼를 정확한 시간에 챙겨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하며 물을 자주 마셔줘야 한다는 거, 잘 안다. 근데 그게 막상 잘 안된다. 의식적으로 하려니 더 안되는 느낌. 단적인 예로 정말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셔야 하는데, 억지로 하려니 괜히 스트레스만 받는다. 하지만, 작심삼일을 모아서 삼백일을 만들어야 하니까, 나는 해야한다.
빗 속을 뚫고 택시가 달리는데, 귀에 꽂은 에어팟에선 좋아하는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졸음이 밀려왔다. 택시에서 정신없이 자는 스타일은 아니라, 눈을 감고 살짝 졸았는데, 그 잠시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혹은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내 시간. 그 때는 피곤함이 매우 컸기에 복통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 다시 한 번 느꼈다, ‘나, 좀 힘들구나’.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거짓말처럼 복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불안한 배를 부여잡고 잰걸음으로 본가에 호다닥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는 역시. 뭔가 내 배에는 문제가 있었고, 화장실을 세 차례를 들락거리고 정로환을 먹고 나서야 좀 진정할 수 있었다. 내 뱃속에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스트레스 지수도 함께 측정했었는데, 놀랍게도 9점. 10점이 최악이었는데 1점 차이로 최악은 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트레스가 만땅. 일박이일에서 예전에 김선호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그게 내 얘기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새치 머리가 늘었나?!) 나름 외유내강인 줄 알았는데, 외유내유였나보다. 것도 아니면 너무 둔한 나머지 몸과 마음이 질러대는 비명을 듣지 못했거나.
걷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도 내가 이렇게 살이 찐데에는 그만큼 맛있는 걸 좋아한다는 소리겠지. 그렇다고 내가 인스턴트 음식광이거나 술과 안주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다. 심지어 나는 식재료 고유의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간도 심심한 걸 좋아하고, 소스 같은 건 잘 찍어먹지 않는 편. 짜게 먹으면 신경질이 나는 느낌이라, 별로. 그러니까, 결국엔, 내 살은 진짜 많이 먹어서 찐 거라는 거다. 세상에나. (더 놀라운 건 나는 빨리 먹는 편도 아니다, 나는 천천히 많이 먹는다.)
다행히 복통은 장염으로 번지지 않고 잠깐 한 차례의 단순 에피소드로 막을 내렸다. 혹시나 장염일까 싶어서 잠시 또 스트레스가 밀려왔는데, 정로환 한 번에 싸악 가라앉았다. (그래, 아플 땐 참지 말고 약을 먹어야한다.) 나이가 들면서 아픈 게 너무 싫어졌다. 어릴 땐 아프면 학교도 안가고 그냥 집에 드러누워 앓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은 그렇다고 결근을 쉽게 할 수도 없다. 적당히(?) 아프면 약으로 버티면서 출근 하는거다. 나 원 참,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이런 서러운 짓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어쨌든, 나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당분간 노력을 조금 해볼 생각이다. 더 아프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나의 오래된 남자친구는 고맙게도 내 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하면 살이 쪘든 그렇지 않든 자기 눈엔 다 예쁘다며, 평소엔 잘 하지도 않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던지는 남자. 만약 그가 내 외적인 변화에 민감한 사람이었다면 내 자존감은 이미 지하 바닥을 쳤겠지.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살 몇 키로 좀 쪘다고 자존감 타령하는 게 좀 웃겨보일 수도 있겠지마는, 그리고 한심해보일 수 있겠지마는,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내 몸무게와 자존감을 분리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 살이 쪄도 예쁜 옷 입을 수 있고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안다, 하지만 내 눈에 내가 만족이 안되는 걸 어쩌겠는가. 연예인 같은 마른 몸을 갖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만족할 만큼만. 내가 나 스스로가 가볍다, 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만. 내 건강이 돌아왔구나, 깨달을 수 있을 만큼만. 노력해보기로.
우리 모두 건강하자, 나이 먹을수록 아프면 괜히 서럽다.
가족들하고 같이 살아도 서럽고, 혼자 살면 더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 아프지 말자.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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