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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그리운 나의 밤공기 (저녁형 인간의 하소연)

by 김매디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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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뒹굴거리다보니 휴일 중 절반이 소멸, 일요일과 월요일 휴무 중, 일요일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눈 뜨자마자 점심 먹고 티비보다가 급 쏟아지는 잠에 해 질 때까지 또 자고는, 8시가 다 되어 다시 일어나서 씻고, 10시쯤 늦은 저녁을 먹고는 지금. 역시 나는 죽었다 깨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는 글렀다. 그렇다고 아침 시간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굳이 꼽자면 새벽 6시에서 7시 사이의 이른 아침을 좋아한다. 햇살이 자그마한 보석처럼 쏟아지고, 고요한 가운데 새 소리가 울리는, 약간 찬공기에 살짝 안개가 드리워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면 온 몸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그런 아침을 좋아한다. 어른이 되고나서는 자주 겪는 아침은 아니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는 날엔 뭐든 잘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울렁임이 가득 차오른다.

아, 여행을 가면 종종 이 시간을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나 나의 오래된 남자친구와의 여행에서는, 그의 바쁜 스케줄 덕에 여행지에서 이른 시간에 출발해야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 때마다 낯선 곳에서 맞는 새벽 공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바다나 강 근처로 자주 여행을 가는데, 인적 없는 바닷가의 이른 아침은 그야 말로 다른 세계나 마찬가지다. 조용한 가운데, 갈매기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고, 가볍게 부는 바닷 바람과 쏴아아, 쏴아아, 밀려드는 파도 소리만이 가득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바다 특유의 향과 함께 차가운 공기가 폐를 타고 넘어온다. 그럴 때면, 오감이 반짝, 하고 정신을 차리는 기분, 아주 상쾌하다.

강릉 여행을 갔을 때, 숙소 앞이 바로 바다였다. 정확히 새벽 6시의 강릉 바다.


근데 이게, 타고나기가 저녁형 인간이라, 아침 일찍 일어난 날은 체력이 더 빨리 소모되는 느낌(?)이다. 딱히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피곤해서 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거든.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대는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딱 그 시간대다. 저녁 7시, 8시는 너무 이르다. 그 시간에는 무언가 부산스럽고 너무 들떠있다, 사람들도, 시간 자체도. 9시는 저녁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체감상 저녁인데, 표면상으로는 밤이다. 그래서 별로, 이도 저도 아니라.

밤 10시가 되면 어떤 계절이든 깜깜하다. 나는 편안한 장소에서 맞이하는 그 어둠을 상당히 좋아라한다. 물론 당장 내 눈 앞이 깜깜한 건 나도 무섭고 싫지만, 내가 말하는 깜깜함은 그런 어둠이 아닌, 따뜻하고 차분한 시간의 상징적인 의미이다. 창 밖으로 차들이 간혹가다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다리 위에서 가득 반짝이는 가로등들을 보고있노라면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린다. 시간이 흐를 수록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고요에서 정적이 되는 시간, 그 시간이 새벽 1시인데, 그 때 부터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세상에 나와 내 작은 방이 전부인 것 같은, 자그마한 나만의 우주에서 부유하는 느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밤 풍경은 부산에서의 밤이다. 늦은 밤에 부산엘 도착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먼저 부산에서의 스케줄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린 그가 잡아놓은 근처 숙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 때 택시 안에서 바라보았던 부산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까만 바다와 반짝거리는 도시, 그리고 촛불처럼 불을 밝히고 있던 달동네의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그림처럼 내 머릿 속에 남아있다. 아, 부산도 가고 싶고,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 코로나 덕분에 맘 놓고 여행 못간지가 너무 오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밤공기를 실컷 마셔보고 싶다.


약간 이건 나 스스로도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밤에 보는 그 새카만 바다가 무서우면서도 좋다.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계속 공포영화를 보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한밤중의 바다는 분명 무섭다. 깊은 바다일 수록 더더욱. 바람이 거센 날엔 파도가 철썩 거리다 못해 운다, 콰르릉, 콰르릉. 그걸 보고 있으면 불안함이 밀려드는데, 동시에 심장이 짜르르 울리며 묘한 희열을 느낀다. 종종 시꺼먼 바다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그 때 뭔가 기분이 묘하다.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자꾸만 시선이 간다. 강릉엘 놀러갔을 때, 그 바다가 그랬다. 파도가 심하게 치진 않았지만, 잔잔하진 않았던 날이었고, 남자친구는 숙소에서 먹을 회를 포장하느라 횟집 안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횟집 건너편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아 밤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계속 모래사장을 적시는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었더랬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시간대의 바다는 그런 묘한 매력(?)이 있다.

대학생 때 킬힐이 유행이었더랬다. 당시에 나는 꾸미기를 좋아했으며, 사람들과 어울려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는 걸 즐겨했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9센치 짜리 까만 킬힐을 신고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는데, 함께 동네로 돌아와야 하는 친구 두 명이 모두 취해버렸었다. 그 때의 나는 밤에 걷는 걸 좋아해서, 번화가에서 술을 마시고 나면 천천히 30분이고 1시간이고 걸어서 집에 오곤 했었다. 게다가 그 땐 카카오 택시 같은 것도 없었기에, 마을 버스가 끊긴 후엔 무조건 걷는 방법 뿐이었다. 예상했겠지만, 그 날 나는 그 킬힐을 신고 양쪽에 그 친구들을 끼고선 동네까지 걸어왔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동네는 길이 전부 평탄한 공원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공원 길을 절반 쯤 걸었을 때, 나는 힐을 벗어서는 손에 들고 스타킹만 신은 맨발로 걸어야만 했다. 내 발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을 데려다 놓고 나는 조금 더 걸어야 했기 때문에, 나름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택시가 있었더라도, 그렇게 걸어왔을 테다.

그래서 사진첩에 자꾸 이런 사진들만 가득하다. 나의 찐친들과 만나면 아지트 처럼 방문하는 바. 사진을 보니 갑자기 칵테일이 마시고 싶다.


여튼, 그만큼 나는 그 밤 시간을 좋아한다. 살짝 기분 좋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고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조용한 동네길을 걷고 있으면, 그야말로 감성폭발. 혹은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게 함께 걷고 있으면 세상에 딱 둘만 남은 기분이라 가슴이 더욱 설렌다.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걸어도, 그 시간이라면 마냥 재밌다. 특히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때의 밤 산책길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찌르르,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 낮의 습기가 가라앉아 살갗에 살짝 차갑게 와닿는 공기, 하늘에 떠있는 하이얀 달과 걸을 때마다 살짝 살짝 닿는 서로의 따뜻한 손등까지. 이 완벽한(?) 산책은 절대, 저녁 시간대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한창 밤 공기를 마시며 돌아다닐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밤길도 위험해졌고, 카카오택시도 많아졌으며, 코로나까지 극성이라, 그런 산책을 못한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이 글을 끄적이다보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한가득. 그 땐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고, 이상한 사람이 따라올까 걱정하지도 않았었는데. 밤을 사랑하는 저녁형 인간은 이 모든 것이 아쉽다.

곧 다시 마스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내 오래된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밤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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