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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내 발목, 화이팅 (새로운 기기 체험, MRI)

by 김매디 202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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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바꿨다. 직장 근처의 작은 병원엘 다녔었는데, 저녁형 인간인 나에겐 출근 전에 한시간 일찍 나와 병원엘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레 피곤이 누적, 끔찍한 다래끼까지 겹치는 사태가 발생해버렸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아침, 본가 바로 앞의 큰 병원을 다니기로 했다.

실비 보험 하나 없는 내게 주기적인 병원 방문은 그야말로 생돈을 공중에 휘날리는 것과 같았다. 주사 치료에 레이저 치료, 충격파 치료까지. 동네 병원이었지만 나름 할 건 다 했더랬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든 치료가 효과가 있었고, 여전히 통증이 있지만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 물론 그 과정 중엔 반깁스부터 교정기, 마지막 보호대에 이르기 까지 험난한(?) 여정이 있긴 했다. 여하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치료며 약, 보조기구 등이 돈이었다. 몇 천원도 아닌 몇 만원씩.

아, 이 모든 건 2월 3일 수요일 밤 8시 30분 쯤 몇 초만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그 날은 야근을 한 날이었고, 평소보다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집엘 돌아가려고 했었다. 함께 퇴근한 지인과 맛난 걸 시켜먹겠다며 신나게 카카오 택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택시가 도착, 늘 그렇듯 택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는, 인도에서 차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래, 딱 그 순간이었다.

돌연 발이 평소보다 훨씬 더 깊게 빠진다는 느낌이 들면서, 아차, 싶었다.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보려했지만, 나는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고, 다리엔 힘이 없었으며, 이미 그 때도 체중이 어느정도 나가던 상태였다. 단 몇 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완전히 엎어졌고, 그렇게 내 오른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다. 왼쪽 무릎은 까져서 피가 철철 났으며, 택시 번호 확인을 위해 들고 있다가 놓친 핸드폰 액정에는 가늘고 길게 사선으로 금이 갔다.

넘어졌을 당시를 그렸던 인스타툰.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날이 밝았을 때 내가 넘어졌던 자리를 다시 확인했는데, 딱 사람 발 크기의 구멍들이 몇 개가 있었다. 도로포장을 하면서 잘못해 생긴 것들이었고, 나는 정말 놀랍게도(?) 억지로 그 구멍에 발을 맞추기도 어려울텐데, 그 구멍에 오른발을 빠뜨렸던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어딘가로 발을 내딛을 때, 꼭 아래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파서 발을 잘 못딛는 이유도 있었지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순간 내 오른 발목과는 영영 작별할 것만 같았다.

발목을 다치니 부담스러운 상황들이 생겼다. 의도치 않게 나는 드러나는 환자였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걱정하는 마음에 나와 마주할 때마다 그 날의 일에 대해, 고통에 대해, 그리고 완치날(?)에 대해 물었다. 개인적으로, 약해보이는 게 너무 싫은 사람이라, 동료들의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또 한 번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혹시나 누군가가 보이는 곳을 다쳤을 때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나, 그래서 상대가 불편했을 만한 상황을 만들진 않았나.

생각보다 주변에선 발목을 다쳐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게 같은 조언을 했는데, 끝까지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것이었다. 나은 것 같더라도 꼭 병원에서 완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치료 받으라고. 이유인 즉슨, 그네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통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이건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오지말라고 할 때까지 가려고 한다. 아픈 건 정말 싫다, 그것도 오래 아픈 건 최악이다. 거기에 만성 통증? 오,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다.

바꾼 병원은 진료과목별로 접수/수납과 안내, 진료 파트가 모두 나뉘어진, 입원과 수술도 가능한 정말 큰 병원이었고, 내가 방문한 정형외과에는 또 세부 분야별로 여러 명의 의사선생님들이 계셨다. 심지어 나를 진료해주신 선생님은 족부전문으로, 더더욱 신뢰가 갔다. 건물 규모가 그렇게 엄청나지 않아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직접 들어가 보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정말 큰 대학병원과 동네병원의 장점만 뽑아 왔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각 팀별 의사소통이 매끄럽게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 덕분에 환자들도 심하게 붐비지 않고 순번대로 순조롭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정확한 진료를 위해 엑스레이에 추가로 엠알아이를 찍었어야 했다는 것. 난생 처음이었다, 엠알아이라니. 맨날 영화 속에서나 봤던 그 거대한 통(?)을 들어가는 것인가, 싶었는데 정말이었다. 통은 정말 거대했고, 촬영실은 생각보다 추웠다. 반듯하게 누운 채로 30분 동안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지시사항을 전달 받았다. 그리고 친절한 선생님께서 여러 개의 커다란 찍찍이 띠들로 내 몸을 둘러 나를 고정시켰다. 내심 통 안에 온 몸이 다 들어가는 건 너무 무섭겠다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발목이라 하체만 들어갔다. 촬영 시 소음이 발생할테니 귀마개를 씌워주겠다며, 선생님께선 묶여있는(?) 내게 손수 귀마개(라기보다는 헤드셋 같은)를 씌워주시고는 문을 닫고 조종실(?)로 사라지셨다. 나는 거대한 그 통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다.

방에서는 들어갈 때부터 계속 웅웅 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는데, 촬영이 시작되자 여기에 덤으로 따따따따, 드드드드, 하는 소리들이 주기적으로 들렸다. 귀마개를 한 덕에 그 소리들이 마치 에이에스엠알 처럼 들려왔고, 아침 일찍부터 병원 가야한다고 설쳐댄 탓에 못잔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이 들면 몸을 움직일 것만 같았고, 살짝 졸았다 깨기를 반복하며 30분을 보냈다. 사실 처음에 자리에 누웠을 때 선생님께서 춥진 않느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했는데, 춥다고 할 걸 그랬단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니다, 그랬다면 상체에 무언갈 덮어주셨을테고, 그러면 진짜 푹 잠이 들어버려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래, 추운 이유가 있었다.


다행히 수술을 해야하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염증이 생겨서 물이 조금 차있었지만 인대는 아물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다음주부터 주사치료를 매주 3회 정도 받기로 했다. 4월 한 달은 월요일마다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본가와 가까운 만큼 시간 꼭 지켜서 진료를 받아보는 것으로.

지인이 보내 준 벚꽃길. 여의도 부럽지 않다. 나도 가고 싶다...


빨리 전처럼 걸어다니고 싶은데, 내 욕심이 너무 앞섰다. 지지난주와 지난주, 다 나은 것 같은 마음에 동네 병원도 안가고, 보호대만 찬 채로 출퇴근 왕복 1시간 거리를 걸어다녔으니. 염증이 생겨 물이 찬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당분간 다시 자중모드. 날이 이렇게나 좋은데, 걸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꽃길을 못봤다, 올해는. 올해만큼은 꼭 여의도 벚꽃길 걸어보려 했는데, 코로나도 여직 기승이지만 내 발목도 아직이다.

내년엔 꼭 이전처럼 예쁜 옷 입고 마스크 없이 튼튼해진 발목으로 꽃길을 걸을 수 있기를.
내 발목아, 화이팅, 잘 나아보자.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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