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빠가 차돌된장찌개를 끓여주셨다. 토요일, 고기가 먹고 싶다던 내 말에 부모님께서 당장에 사오신 소고기들(등심, 차돌박이, 갈비살)을 신나게 구워먹고 조금 남은 것들로 알차게 끓인 것이었다. 무, 호박, 표고버섯, 청양고추, 그리고 화룡점정, 차돌박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토록 평범한 재료들이 만나(물론 차돌박이는 범상치 않은 재료이긴 하지만) 엄청난 요리가 되는 것은.
차돌된장찌개 하면, 지금껏 가장 먼저 떠오르던 건, 나의 오래된 남자친구와 파주엘 갈 때마다 꼭 방문하는 고깃집의 차돌된장찌개였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그 가게는, 커다란 가게 규모에 비해 갈 때마다 한산 했더랬다. 신기한 건 나름 파주 맛집이라서 꽤 소문난 곳이었는데, 늘 그렇게 우리가 갈 땐 사람이 없었더랬다. 어쨌든,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남자친구가 인정하는 곳이었고, 차돌된장찌개가 메뉴판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우린 종종 먹고싶을 때마다 그곳을 찾았었다.
왜 사장님께서 메뉴에서 차돌된장찌개를 없앴는지 모르겠으나, 그것 때문에 그 식당을 찾았던 우리로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파심에 짚어보건대,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차돌된장찌개는, 여느 고깃집에서 사이드 메뉴로 볼 수 있는 그런, 짜투리 고기로 대충 끓여낸 게 아니다. 진짜 메인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류의 것이었다. 회사 앞 고깃집에서 점심시간에 잠깐 런치메뉴로 파는 퀄리티도 훨씬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거길 그 차돌된장찌개 하나로 찾았던 게 아니겠는가. 더불어 나와 남자친구가 그 메뉴가 사라졌다는 걸 알았을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지 아니하는가.
그 날 이후로 그런 차돌된장찌개를 먹지 못하던 차였다. 사실 차돌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이번에도) 아빠에게 노래를 부른 먹보딸이었지만, 그렇게 까지 맛있을 줄은 몰랐더랬다. 우리 아빠가 요리를 좀 잘하시는 편이긴 하신데, 나는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근데 오늘 먹은 이건 거의 인생 음식에 꼽을 수 있을 정도? 이건, 우리 엄마의 소갈비찜과 맞먹는 정도. 뜬금없지만, 아, 나는 소고기를 너무나 사랑한다.
한식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고, 잘 만든 정갈한 한식도 사랑하지만, 나는 한식 특유의, 만드는 사람의 고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빔밥이며 김밥, 명절 음식 모든 것들이 그렇다. 재료 하나하나에 손길이 가지 않는 것이 없는데, 요리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잘 모른다. 비빔밥은, ‘다 넣고 비비면 되는 거’, 김밥은, ‘다 넣고 말면 되는 거’ 정도로 생각한다. 그게 아닌데 말이다.
근데, 차돌된장찌개는 정말 다 썰어넣고 맛난 된장을 잘 풀어 잘 끓여주면 된다. 다만, 어떤 재료를 어떤 타이밍에 넣을지만 잘 맞추어주면 되는 것. 아주 간단한 레시피로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 정말이지 이런 요리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된장이 만들어지는 엄청난 과정은 생략하도록 한다. 우리는 그래도 된장까지 직접 담궈야 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진 않으니까. 아, 당연히, 직접 할 수 있다면 최고. 집된장이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부러워만 하고 맛난 된장을 사먹는 사람. 왜냐면 나는 가장 작은 노력으로 최상의 맛을 내고 싶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게을러서 그런다, 게을러서.
비도 많이 오고, 아침부터 병원엘 다녀와서 발목이 또 한참 쑤셔대는 바람에 아주 우울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이런 자그마한 찌개 하나가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든다. 맛있는 요리의 힘은 이렇게나 어마어마하다. 이건 맛있게 먹은 만큼 모두모두 나의 살이 되겠지마는, 그래도 건강하게 먹은 느낌이다. 이래서 다들 집밥, 집밥, 노래들을 부르나보다. 집밥을 먹으니 충전이 된다, 몸도, 마음도.

독립을 하기 전엔 배달 음식 시켜먹는 게 낙이었더랬다. 가끔씩 가족들이랑 이것저것 시켜먹는 게 그렇게 신이 나고 맛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혼자 살면서 부터는 배달 음식이 제일로 맛이 없다. 아무리 맛있는 프렌차이즈도, 아무리 빠른 배달도, 다 그냥 맛이 없다. 맛있을 것 같아서 시키면 다 그 맛이 그 맛이다. 모두 똑같은 조미료, 기름을 쓰나 싶을 정도로 소름돋게 똑같다. 특히나 튀김류는 하루를 넘어가면 그냥 맛이 다 똑같아지는데, 정말 다시 먹고 싶지 않다. 전자레인지에 다시 돌리고, 에어프라이어에 호흡기를 달고 해봤자 소용없다, 그냥 맛이 없다. 내 남자친구 말마따나 나는 일산촌사람이라 그런가보다. 서울 배달음식은 도대체가 맛이 다 똑같다.
그래서 나중엔 맛있는 반찬집에서 반찬을 사다가 밥을 해먹었는데 이게 조금, 아주 조금 낫긴 했다. 근데 결국은 이마저도 똑같은 맛. 그냥 다 똑같은 맛이다. 아무래도 내가 어떤 특정 인공조미료의 맛을 알게 되어버린 것 같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식당엘 직접 가서 먹는 건 그래도 맛있다고 느끼는 듯. 나름 입맛 엄청 무난한 사람인데, 역시나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까탈스러워지는 느낌이다. 별 게 다 그렇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꼭 투룸이든 지상층이든 어쨌든 지금 이 집을 벗어나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이 집에서의 1년이 이제 막 벗어난 지금, 나는 또 한 번 두 주먹 불끈 쥐고 이사의 꿈을 불태워본다. 천지신명님, 도와주세요.
숨을 쉬고 싶어요,
오늘도 이만, 통통통.
'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브 마이 셀프 (0) | 2021.04.16 |
---|---|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0) | 2021.04.15 |
모동숲에 진심인 편(포켓 캠프 사랑해요) (0) | 2021.04.08 |
내 발목, 화이팅 (새로운 기기 체험, MRI) (0) | 2021.04.06 |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0) | 2021.04.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