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이사를 너무나 하고 싶다, 라는 것.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반지하에 아주 작은 원룸. 그래도 신축이고, 주방(이라고 하기에도 웃기지만 어쨌든)이 다른 원룸에 비해 잘 나왔기 때문에 선택을 했었더랬다. 공동현관비번에 나름 주택가의 메인 도로에 집이 있다는 것도 이 집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좋은 점이 참 많은 곳이다. 신축에 내가 첫 입주자인 것도 그랬고,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단 것도 그랬다. 집 주변에 빨래방이며 커다란 시장, 편의점까지 완벽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는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 버스도 다니는 그런 곳.
문제가 있다면,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았고, 그것도 5층 밑으로는 살아본 적이 없는 애였으며, 대학 시절에도 자취 한 번 하지 않고 꿋꿋하게 통학을 했던 애였다. 즉, 난생 처음 서울에서, 그것도 빌라, 심지어 반지하, 무려 엄청나게 작은 집에서 살게 된 것. 이렇다할 살림 노하우도 없는 내가 지금 여기서 1년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도 놀라울 다름이다.
그래서 닥친 나의 고민은 세 가지. 환기, 벌레, 습기. 나란 애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방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애였다. 그래야 정신이 차려지고, 방안의 공기가 한 번 순환이 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여기 와서부턴 창문을 연 것이 손에 꼽는다. 이유는 벌레 때문에. 정말 벌레는 죽을만큼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냥 내가 조금 답답하고 말자 싶었다. 결국 창문을 못여는 대신 공기청정기와 제습기를 두고 매일 사용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습기와의 전쟁은 매일 치르는 중이다.
혼자 살게 되면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게 항상 요리를 해서 집밥을 내 손으로 차려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 아지트처럼 우리집을 사용하는 것. 하지만 이 손바닥만한, 창문을 열 수 없는 이 곳에서는 요리도, 손님 초대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한 개도 없었다. 이쯤되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 집으로 독립을 하기로 했던 걸까?

그래, 돌이켜보건대, 그 땐 이 집이 최선이었다. 이 집 말고 다른 후보들은 처참(?)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대놓고 바퀴벌레 퇴치약이 붙어있는 곳도 있었으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더 작은 곳도 있었다. ... 쓰다보니 또 화가 나는데, 애초에 반지하에 사람이 살 공간을 왜 만드는 걸까? 법적으로 그냥 안된다고 해줬음 좋겠다. 물론 덕분에 내가 독립을 해서 나와 살곤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아무리 넓고 좋은 집이라도 반지하는 돈 받고 사람을 살게 해선 안된다. 돈을 주면 모를까.
코딱지만한 원룸들도 마찬가지. 도대체 그렇게 작은 집을 누구 살라고 만든 건지 모르겠다. 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데, 아니, 가난하고 돈 없으면 성인 한 명 겨우 누울 공간이 끝인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게 맞는건가? 반지하도 그렇고 형편없는 원룸도 그렇고, 둘 다 인권을 침해하고도 남는 것들이다. 그냥 다 허가를 안내줬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들도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그런 말도 안되는 집들은 집으로 허가해주지 않았으면.
사실 그런 이유로, 나는 역세권 청년주택을 정말 싫어한다. 역세권인 거 알겠고,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을 위해서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럼 공간을 좀 사람 살만한 공간으로 빼주면 안되는 걸까? 손바닥만한 집을 전세도 아닌 반전세, 월세 개념으로 빌려주면서 한 달에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3-40만원까지도 임대료를 내라고 하니. 이 무슨 얼토당토 않는 경우란 말인가. 그러면서 인프라가 좋다고, 한강 조망권 타령,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 이런 문구나 붙여대고 있으니 아주 이마를 탁 칠 일이다.
나라에서 돈 없는 우리네들을 위해 집 마련해주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그러면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도 함께 마련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해주는 김에 좀 좋은 집을 부탁한다. 차라리 역세권 아니어도 되니까 혼자 사는 청년이라도 투룸, 신혼부부면 넉넉하게 쓰리룸을 주면 안되는 것일까. 게다가 항간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과 행복주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출산율 높이기라던데, 그 코딱지만한 원룸에서 퍽이나 결혼 생각이 들겠구나, 싶다.
간만에 투덜이 등장. 집까지 마련해주는 국가에게 이것보다 더 달라며 돈없는 찡찡이가 징징거려 보았다. 어쨌든 나는 요즘 모든 생각이 <이사>로 귀결되고 있다. 일년 전 이곳을 아지트 처럼 쓰겠다던 나의 야무진 꿈은 정말 꿈이었고, 현실은 그저 반지하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빌라에서 내내 살았어서, 잠시 아파트에 갔을 때 너무 불편했다고 했다. 특히 엘레베이터 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고. 나와는 정반대라 정말 놀랐더랬다. 나는 아파트가 좋다, 고층일수록 좋아하는데, 탁 트인 베란다며, 창 너머로 보이는 전경(아파트 단지 내 풍경이건, 공원길이건 상관없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경비아저씨께서 늘 계시는 것도 마음이 편하고, 정해진 날짜에 깔끔하게 분리수거를 해서 가져가는 것도 좋다. 정리된 주차장도 좋고 차도와 인도가 명확하게 분리된 것도 좋다. 슬프게도 나는 이 모든 것을, 지금 이 집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아파트를 좋아하는구나.
어서어서 이사를 가자, 높은 곳으로 올라올라 가야겠다. 집도, 내 상황도, 모두모두 위로위로.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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