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스스로 예민해지고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면, 그건 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이다.
과거 방송국을 다닐 때 스스로를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했더랬다. 그 전까지는 아주 극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몰랐었다. 그 말인 즉슨, 첫 째, 그만큼 그 시절이 엄청나게 힘들었단 말이고, 둘 째, 이전엔 나 자신이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는 지 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고통 받았을 수도 있단 의미이다.
방송을 할 땐 몸과 마음이 모두 걸레짝이 났었다. 막내작가라는 신분이 그러했고, 방송국이라는 곳의 체계가 그랬다. 365일 중 366일을 일하는 곳이었고, 빨간 날이고 명절이고 할 거 없이 일하는, 그야말로 비효율의 끝판왕 같은 곳이었다. 그 당시 아주 충격적이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면 정말 다시는 방송을 하고 싶지 않단 마음이 울컥 치민다.
방송국엔 편집실이라고, 편집을 할 수 있는 작은 방들이 여러개가 붙어있는 층이 있다. 그곳에서 각 프로그램의 피디며 조연출들이 편집을 하는데, 대개는 팀별로 하나 내지 두 개의 방을 쓰게 된다. 때문에 방이 붙어있는 편집실 특성상 원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른 프로그램의 피디며 작가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
그 날도 내 기억에 나는 늦은 밤까지 그 편집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피디님들이 필요한 자료를 날라야했고, 때로는 이것저것 심부름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날 편집실 복도에서 어떤 여자 스탭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복도에 주저앉아 있었고 다른 스탭들이 그녀를 달래주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충격적이게도, 몇 시간 뒤 새벽, 울고 있던 그 스탭의 어머니깨서 돌아가셨다는 문구가 그 팀의 편집실 문 앞에 붙여져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단 말을 일하던 중에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기억하건대 그 자리에서 바로 병원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아니, 근데, 조부모상도 아니고 모친상인데... 하나 뿐인 어머니보다 중한 것이 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했으며 화가 났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 스탭들이 받는 월급은 150(당시 기준)도 안되었으며, 만약 그 스탭이 어려운 외주 소속이었다면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을테다.
제발 지금은 방송 제작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를 기도하지만, 내 오래된 남자친구가 여전히 빠듯한 일정과 밤샘 편집에 시달리는 걸 보면, 결국 나아진 건 한 개도 없단 생각이 든다. 여튼, 그런 곳에서 나는 나의 예민함에 대해 처음으로 마주했고, 그것이 나 자신을 갉아먹는 날카로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칼날이 안팎으로 향해서 조금이라도 나를 건드리면 상대는 물론이고 나 역시도 크게 상처가 났다. 자꾸 가까운 내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고 별일 아닌 것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을 느꼈다.
감정 컨트롤이 스스로 안된다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았다. 특히 <화>라는 감정이 너무 쉽게 가슴 속에서 입 밖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속이 막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게 느껴졌고, 와락 쏟아내고 나면 시원함보다는 찝찝함이 남았다. 그러면 곧 <우울>이 찾아왔고 덩달아 몸이 무거워졌다. 체중이 늘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온 몸이 무거웠고 늘 피곤했다. 체력이 쭈욱쭈욱 깎여나가는 것을 매일 체감했다. 몸이 쉽게 지칠 수록 감정 기복은 더욱 널을 뛰었고, 분노를 다스리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최악의 길을 걷던 중,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걸 스스로 깨달았고, 깨닫게 된 즉시, 휴식과 이직을 선택했다. 나는 살아야했고, 그 길은 중단 밖에 없었다. 그 때 멈추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엄청 나게 예민하고 뾰족한 방송작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거기에 건강은 바닥을 쳐서 늘 골골 거리는.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방송 일 자체는 참으로 재밌었다. 나와 잘 맞기도 했거니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것, 그것도 시각적인 영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일이었다. 만약 그런 말도 안되는 제작 환경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행복하게 방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친구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하나 개설했었고, 영상 기획부터 편집, 업로드까지 둘이 하면서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났다. 특히 나는 편집의 즐거움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는데,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이미 그 업계에서는 베테랑인 남자친구에게까지 훈수를 두려다가 크게 싸운 적도 있을 정도였다. (네, 반성합니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건, 그 때 당시 느꼈던 예민함이 최근 다시 스물스물 밀려올라오고 있는 걸 느꼈다는 것. 즉, 내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평화롭던 나날들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왜 나로하여금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두면 알아서 내 할 일을 하는 앤데, 자꾸 건든다. 왜 그러는 걸까. 그냥 나를 좀 내버려두길 바랬는데, 결국 내가 결정하게 만들어버리는구나. 나는 굳이 뱉지 않아도 될 말을 뱉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는데, 최근 내게 그런 일이 너무 잦았다.
-나는 네게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너는 왜 내게 자꾸 시비를 거는 거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뱅뱅 돈다. 물음표. 내가 싫어하는 류의 물음표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덩달아 나는 뾰족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의 동료는 나의 한숨과 분노(그녀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한), 태만(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에 시달리는 중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 사실 본사를 통해 인수인계 받느라고 정신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내가 대놓고 그녀 앞에서 메일로 온 사람인 소식(?)을 읊고 있으니, 이 사람은 도대체 뭔가 싶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결정했고, 결심했으며, 내 주변은 이미 옛날옛적부터 내게 결정을 종용했었더랬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곳에서는 있지 못하는 게 나의 성격인 것 같다. 심지어 여긴 나아가다 못해 뒤로 퇴보하는 중이니, 내 스트레스가 더더욱 극에 달할 수밖에. 나는 나아가고 싶고, 여긴 돌아가고 싶어하니까 우린 서로 점점 멀어지는 수밖에.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별 얘길 다 적는구나.
하하하.
이제는 채비를 하고 발을 내딛을 때.
열심히 짐을 꾸려보아야 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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