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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BTS가 불러온 현타(feat. 코로나)

by 김매디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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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인더숲을 보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밤. 유체이탈을 한 것 마냥, 작은 원룸에 앉아 조그마한 패드 화면으로 월드스타의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는 나 자신. 그리고 화면 속, 나보다 너덧살은 어린 슈퍼아이돌. 순간 엄청난 거리감이 제대로 명치를 때린 느낌이었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우적우적, 닭가슴살과 양상추를 씹어먹으며 화면을 바라보는데 아주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화면 속에서는 전혀 다른 판타지 세상 마냥, 마스크 없이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나는 오늘만 해도 10시간을 넘게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었더랬다. 집에 걸어오는 길에도 맑고 청량한 가을 공기 한 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마스크 너머로 죽지 않을 만큼 숨을 쉬는 기분.

드라이브 중에 뒷트렁크를 열고 앉아 한우버거를 먹고, 음악을 틀어놓고 가볍게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한편의 영화 같았다. 아마도,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 떄문이었겠지. 반면에, 드넓은 강에 자그마한 카누를 타고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내 최애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 극한 현실 같아서 순간 집 밖으로 뛰쳐나가 마스크 없이 냅다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연예인과 나의 삶을 비교했다기 보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은 비현실적인 게 되었다는 것이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미지다, 이런 말장난. 여하튼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이렇게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나 역시 나약하다, 그런 비현실 같은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인 장면을 바라보며 현타를 느끼고 있다.

크리스피 도넛을 롯데마트에서 만났을 때의 놀라움이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도넛 세 개. 코로나 시대의 내가 가끔 즐길 수 있는 그나마의 행복이다.


여행이 가고 싶은데, 맘대로 갈 수 없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뇌가 환기를 못해서 딱딱하게 굳었다. 예전엔 아무 걱정없이 숙소 예약하고 기차표 예약하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나의 최애 운송수단인 KTX가 너무 타고 싶다. 가면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간식도 먹으면서 여행 가기 전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은데. 지금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 운전면허도, (그러니 당연히) 차도 없는 내게, 여행은 갑자기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영화, 전시, 연극, 뮤지컬, 콘서트, 페스티벌 등... 내가 나를 위해 선물할 수 있는 시간들이 순식간에 증발되어 버렸다. 그래도 책은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도서관을 가지 못하니 그것 또한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 난 특정 장소에 가서, 특정 행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마치 어린 시절 책상 밑을 아지트로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책 읽는 걸 즐겼던 것처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고, ‘전시장’에 가서 전시를 보는 걸 좋아한다. 항상 가던 장소가 아닌 처음 경험하는 곳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해방감을 느낀다. 근데 이젠 낯선 장소에 마스크 없이, 열체크 없이, 걱정 없이, 갈 수가 없다.

평소에 가장 자주 즐겼던 건 영화였는데,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까지의 두근거림을 너무나 좋아한다. 특히 영화 시작 바로 직전, 암전이 되며 배경음악이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그 순간 때문에 영화관엘 간다. 물론 영화가 끝나고 나서 불이 켜질 때, 다른 세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아주 짧고 스펙타클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사랑한다.

감독님들께선 대부분 내 영화가 영화관 스크린에 걸릴 것을 전제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스토리가 진짜 최악이 아닌 이상, 평타는 친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스크린과 어마어마한 사운드에서부터 이미 절반 넘게 먹고 들어가(?)는 것. 근데 그게 바로 영화의 묘미다. 그리고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것 아니던가.

독립하고 나면 제일 하고 싶었던 게, 빔프로젝트를 사서 영화를 보는 거였는데, 이 작은 원룸에서는 빔 쏠만한 벽이 없다, 젠장. 내 문화생활의 대부분을 이 자그마한 패드가 지켜내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참 대견(?)한 녀석이다. 이게 없었더라면 나는 이번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버텨냈을까. 어쩌면 스케치북을 사서 거기에 냅다 무엇이든 그리고, 공책을 사서 무엇이든 썼을까. 아니, 게으른 나는 누워서 핸드폰만 했을테다.

지평 막걸리 이랑이랑 맛있다. 탄산이 장난 없다. 대신 저건 막잔에 꼭 마시길, 다른 술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밖을 나갈 수 없으니 술도 이렇게 집에서 먹는다.


여하튼 방탄소년단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현타가 밀려와 우울해져서 급하게 티스토리를 열었다. 이 우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끄적거리는 수밖에. 매일 글을 쓰다보니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기복도 조금 나아진 것을 느낀다. 감정기복 뿐만 아니라 글솜씨도 늘어야 할텐데. 이렇게 헛소리만 맨날 적어서 솜씨가 늘런지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뭔가 리뷰 같은 글들을 적어볼까 고민 중이다. 리뷰 할 것들은 쌓이는데, 게으른 나는 매일 이런 소리나 적는다.

그럼에도 어쨌든 여기를 찾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놀라울 다름. 조회수가 꾸준히 늘어가는 인프제 글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대세는 MBTI인가. 뭐가 되었든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온다, 어서 머리를 말리고 잠을 자도록 해야지.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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