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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글쓰기 싫은 날

by 김매디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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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날. 이런 날은 억지로 글을 끄집어 내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이럴 땐 그냥 쓰기 싫다는 말을 잔뜩 끄적거리면 된다.

학생 때 있었던 다양한 글짓기 대회들이 문득 생각 난다. 붉은 빛 도는 가느다란 네모칸들이 잔뜩 쳐져 있던 200자 원고지. 글쓰는 것도 좋아했고, 상장도 많이 받아왔었지만, 매번 적는 것이, 연필을 들고 정해진 주제로 그 칸을 채워 나가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쓰기 싫은 날에도 써야 하고, 심지어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누구도 나에게 상장을 꼭 받아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냥 웬지 기왕 쓰는 거 뭐라도 하나 얻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방학 숙제는 일기쓰기 였다. 물론 매일매일 하루의 일과와 나의 감정을 정리해서 적는 것은 상당히 좋은 행위(?)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되는 거라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선생님들에게는 아이들의 일기가 그 아이에 대해 파악하고,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는, 가정에서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게 강제적인 숙제가 되어버리면 일기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싶다. 솔직해질 수 있을까?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일기장에 내 사생활을 시시콜콜 적는 걸 그만두었다. 그 때 그 때의 감정들만 나열했다. 혹은 판타지 소설이나 디즈니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들을 적어두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랬더니 조금 일기를 적는 게 신나졌더라. 하지만 선생님들이 원했던 일기는 그런 게 아니었겠지.

일기보다는 편지쓰는 걸 좋아했었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터졌던 나는, 아무 날도 아닌데 그렇게 편지를 썼더랬다. 졸업 이후로는 만날 일이 전혀 없던 유치원 선생님께도 썼고, 뜬금없이 엄마나 아빠에게도 썼다. 크리스마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산타할아버지에게도 썼으니, 이쯤 되면 내 편지 사랑이 중증이라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아주 어릴 때 였지만, 내가 편지를 좋아했던 이유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 편지를 받고 좋아할 사람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는 걸 표현할 수 있는 게 편지라고 생각했고, 나의 그런 감정이 상대에게도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좋았더랬다.

본명은 필명으로 대체했다. 어린 내가 크리스마스가 아닌 날, 뜬금포로 산타할아버지에게 썼던 간절한(?) 편지다. 난 무얼 그렇게나 받고 싶었던 걸까.


나이가 들면서, 그게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내가 단순히 like의 감정으로 적은 글이 상대에게는 love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 편지는 종종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나의 like가 과하게 감정적이었던 이유도 있었겠다. 편지를 쓰는 순간에는 지나치게 말랑한 제 2의 내가 발동이 걸려서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과한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데, 어릴 땐 그걸 어떻게 조절하는지도 몰랐고, 조절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다행히 깨달음은 빨랐고, 그 이후부터는 편지란 내 사람들에게만 적는 것, 이라는 나름의 룰을 정하게 되었다.

지금은 편지를 적는 것도 일년에 한 장 적을까 말까. 겨우 카드 한 장 적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감정이 매마른 걸까. 아니면 딱히 내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이가 없기 때문일까. 혹은 내가 내 감정을 하나하나 일일이 어딘가에 담아 건네는 게, 나의 감정소모라고 생각해서 일까.

내가 첫 번째 책,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두 번째 책을 출판하고 났을 때의 일이다. 그 땐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성스레 메세지를 적어 책을 주었었는데, 그게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는 걸 알았다. 특히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거의 대다수에게 첫 번째 책을 주었고, 두 번째 책은 그 중에서도 거르고 걸렀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주었음에도, 후회가 남았다. 어찌보면 이건 어디가서 구입할 수도 없는 나의 소중한(당연히 나에게만) 책인데, 그걸 그렇게 진짜 ‘내 사람’들도 아닌 사람들에게 막 주었으니. 상처는 내 몫이었다. 펼쳐보지도 않은 채로 서랍 맨 마지막 칸에 아무렇게나(이건 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의 상태였다) 놓여져 있는 걸 보았고, 책 안의 내 감정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아무렇게나 단정지어버리는 경우도 보았으며, 제멋대로 오해를 해놓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라는 대화가 오가는 것도 들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때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올해 3월 코로나가 더 심해지기 전에 후다닥 다녀왔던 강릉 바다. 제주도와 부산을 사랑했던 나에게, 강릉은 또 다른 매력을 알려준 곳이었다. 조용한 바다, 강릉이다.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좋은 이들이 더 많았고, 그 좋은 이들이 내 글을 참 예쁘다 해주어 그걸로 위안을 얻었고, 다음 책을 출판하겠노라 다짐을 했었더랬다. 슬프게도 아직 그 다짐을 이루지 못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한 권을 다시 출판하리. 그래서 이렇게 쓰기 싫은 나의 감정도 오롯이 적어내려가본다.

아주 소심한 관종이라, 관심은 받고 싶은데 상처 받는 건 두렵다. 칭찬 받는 건 좋은데 비난은 끔찍하게 싫다. 내 글이 처음에 이야기했듯 가벼운 수다 떨기 같은 느낌이니, 그냥 읽는 이들도 그렇게 느껴주기를. 내가 적어내려가는 글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거나, 글의 이런 부분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 내 생각을 고쳐주려하거나, 혹은 나에게 따져묻거나 하지 말았으면. 우린 그저 온라인에서 가볍게 만나 스쳐지나가는 사이 아닌가. 어릴 때의 내가 그래서 상처받았듯이, 여러분도 내게 너무 진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랑은 주세요, 나는야, 이기적인 사람.

글을 적기 싫으니 정말 앞뒤 맥락없이 아무말 대잔치가 이어지는 느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함께 글을 쓰기 싫은 이유에 대해 적어보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면 어느새 이렇게 한 페이지를 꽈악 채울 수 있을텐데. 우리는 이렇게 여기서 만나 스트레스나 풀었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당신이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를, 더불어 나도 적어내려 가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를.

오늘 밤도 이 정신없는 항해를 함께 해주어 너무나 감사할 다름이다.
월요일이 저물어 간다, 내일은 불타는 화요일.
이번주만 인내하자, 곧 빨간 숫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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