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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모지리들의 세상 구하기, 덤으로 성장하기_엄브렐러 아카데미 리뷰 (스포 사방 포진)

by 김매디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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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아주 취향 저격 제대로인 시리즈를 발견, 시즌 1과 시즌 2, 총 20개의 에피소드를 순식간에 봐버렸다. 이름하야 <엄브렐러 아카데미>. 혹시나 시리즈 시청을 시작하려는 분들 중, 결말이 안난 걸 보기 싫어하는 분들은 비추. 이미 시즌 3 확정이라, 시즌 2에서는 결말이 나지 않는다. 물론, 장기적 결말이 나지 않은 것 뿐, 시즌 2 내의 스토리는 마무리 되긴 한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줄거리를 옮겨보자면 대략 이렇다.
초능력은 있지만 동기간의 정이라곤 없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함께 자란 저택에서 다시 만난 남매들. 그곳에서 그들은 충격적인 비밀과 마주한다. 게다가 인류의 종말이 눈앞이라고! 남은 시간은 고작 8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남매들은 세상을 구하고, 시간을 가로지르는 암살자들을 앞서고자 동분서주한다.

시즌 2의 포스터다. 맨 위 부터 넘버 1(루서), 둘째 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버 2(디에고), 넘버 3(엘리슨), 넘버 4(클라우스), 넘버 6(벤), 셋째 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버 7(바냐), 넘버 5(파이브). 각자의 썬구리에 비친 장면이 모두 다르다, 이것이 바로 동상이몽. 시즌 2의 전체적인 스토리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예고편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1989년 10월, 세계 각지에서 43명의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그날 아침엔 임신 중이 아니었다.
와우. 마치 수태고지를 연상케하는 멘트. (시즌 2까지 보고 나면,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의 등장. 그는 43명 중 7명의 아이를 사오게 되고, 몇 년 뒤 이 어린이(?)들은 막강한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 단체가 된다. 그것이 바로 엄브렐러 아카데미.

번호 순서대로 서있는 아이들. 넘버 7(바냐)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실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시무룩한 벤, 너무 짠해...


하지만 하그리브스는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신, 그는 아이들의 슈퍼파워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만 몰두한다. 오죽하면 애들 이름을 냅두고 넘버 원, 넘버 투(우리말로 치면 1호, 2호)라고 부른다. 엄브렐라 꼬맹이들을 입히고, 먹이고, 달래는 건 로봇 엄마인 그레이스와, 인간 보다 더 인간 같은 침팬지 포고였다.

덕분에 세상을 구할 정도로 엄청난 슈퍼파워를 가졌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해낼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시리즈 중간중간 등장하는 표현을 빌자면, <몸만 커다랗고, 정신은 미성숙한> 어른으로 자란다. 그리고 자라면서 뿔뿔히 흩어졌던 그들이 세월이 지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다시 마주하면서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레이스 역을 맡은 배우(조던 클레어 로빈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 분량이 많기를 기도 하였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감독님께서 아주 친절한 편은 아니다. 무려 7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름이나 능력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씬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지나갈 뿐. 감독님 생각은 대충 알 법하다.
-앞으로도 주구장창 등장할테니, 일단 닥치고 봐 ^^

마치, 슈퍼주니어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하나의 그룹인데 멤버가 13명이라니. 처음엔 저걸 어떻게 다 외워, 라고 생각했는데, 맨날 예능에서 보고, 음악프로에서 보고 하다보니 팬도 아닌데 어느새 13명의 이름을 모두 외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1을 보는 느낌은 딱 그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시즌 1 초반부에는 다소 지루한 면도 있다. 시청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감독님은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오랜만에 아버지 장례식에서 만나 놓고 다짜고짜 싸워댄다. 심지어는 한 자리에 모두가 모이는 장면도 많지 않은데, 덕분에 넘버 원부터 넘버 세븐까지 매칭 시키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덩치 큰 놈은 아버지 타령, 칼 쓰는 놈은 로봇 어머니 타령을 하는데, 자꾸 둘은 눈만 마주치면 싸운다.

흑인 여자애는 유명 연예인이라는데, 소속사에선 찾지도 않고 밖에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시즌 1, 2를 합쳐, 그녀를 알아본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수염 난 애는 약쟁이에 게이고 귀신을 보는데, 딱히 그 능력이 어디에 쓸모 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의 능력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수염난 애의 능력 덕에, 죽었음에도 귀신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동양인 맴버도 있다. 몸 속에 거대한 촉수 괴물을 숨겨뒀다가 싸울 때 자유자재로 꺼내서 공격하는 게 그의 능력.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항상 울상인 여자애는 온 몸에 우울의 아우라를 풍기고 다니는데, 칼 쓰는 놈은 심지어 얘를 남매 취급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

그리고 갑자기 하늘에서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놈은 가장 대단해 보이는 능력을 가졌는데, 바로 시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것.

두 개의 시즌을 모두 본 지금에야 그들이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었지만, 처음엔 진짜 저런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 총체적 난국.

우리의 용감한(?) 영웅들이다. 얘네 덕에 우리가 2020년을 코로나와 함께라도 살아가고 있는 거다. 2019년에 왔어야 할 종말을 얘네가 막았거든.


어벤져스나 엑스맨 시리즈를 기대하고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시작했다가는 그 실망감이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냥 이건 정신과 마음이 덜 자란 어른이들의 성장물이라고 보면 딱이다. 거기에 다량의 판타지적 요소 추가. 하지만 절대 재미 없다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시즌 1 초반의 지루함과 불친절함을 잘만 견뎌내면 무리 없이 20개의 에피소드를 정주행 할 수 있다. 한 편당 러닝타임은 40분 후반대에서 50분 후반대. 그럼에도 후반부로 가면 체감은 20분 정도로 느껴진다. 몰입감 더하기 속도감 대박. 고진감래, 그것이 이 시리즈의 전체적인 흐름이다.

부족한 캐릭터들이 모여서 해야 할 일은 시즌 1과 시즌 2, 모두 두 번의 종말을 막는 것. 우리의 미성숙이들이 해야할 일이 너무나 거창하다. 얘네는 모이는 것부터가 문제인데, 자꾸 엄청난 일을 해내야 하니, 계속 해서 문제가 터진다. 어벤져스 처럼 착하면 착! 하는 그룹이 아니다. 하나가 착! 하면 다른 하나가 흥! 돌아선다. 시청자들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녀석들이 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구한다는 거지, 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불친절한 감독님도 그걸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요 모지리들이 어떻게 성장해서 어떻게 세상을 구하는지 지켜봐줘, 라고.

자꾸 잘 알지도 못하는 감독님 이야기 해서 괜히 감독님에게 미안하지만, (할 말은 해야지) 감독님의 7명의 아이들에게 골고루 애정을 주진 않았다. 감독님 스스로가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에게 너무 빙의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적인 예로, 넘버 세븐의 능력(나중에 발현된다)은 넘사인데, 넘버 원은 그냥 거대한 유인원 몸을 한 괴물이다. 그 둘의 능력 차이는 어마무시하다.

사실 넘버 원의 능력은 힘 센 사람, 그러니까 어벤져스로 치면 캡틴 아메리카 정도였는데, 넘버 원이 죽을 뻔 한 걸 하그리브스가 원숭이 혈청(?)을 주사해 살려내면서 몸까지 괴물이 되었다. 만년 헐크 같은 몸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능력은 또 헐크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번호는 1번에 나름 리더라고 하는데, 그럴만한 인재가 아니다. 일곱 명 중 가장 소심하고 멍청하다. 보고 있으면 아주 그냥 속이 터진다. 감히 예측해보건데 감독님은 넘버 원이 정말 싫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캐릭터가 이렇게 까지 발암일까.

루서야, 덩치 값을 해보는 게 어떻겠니, 슬슬. 그렇게 못하겠다면, 너는 넘버 원 자격이 없는 것 같구나.


반면 감독님이 가장 사랑한 건 넘버 파이브. 거의 단독 주인공 급이다. 대체로 모든 일이 그 덕분에 해결이 되고, 단순히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 뿐만 아니라, 냉철한 판단과 엄청난 살인 실력(?)을 갖춘, 그나마 우리가 아는 영웅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다. 소년의 몸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게 적과 싸울 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 게다가 시간 여행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 살아온 날도 다른 형제들 보다 월등히 길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똑똑한데다가 섹시하다, 소년의 몸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다 큰 성인이다. 이 캐릭터의 결핍은 사람과의 감정적인 교류에서 오는 모든 것들. 그러나 그것마저도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모습들을 보면 제일 먼저 결핍에서 벗어난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감독님, 파이브가 그렇게 좋으셨쎼여?

이렇게 까지 매력이 넘칠 일인가, 세상에 마상에. 이목구비 실화니, 띠용이다, 진짜.


근데 나 같아도 일곱 중 누구 하나를 뽑으라면 파이브를 뽑겠다. 넘버 쓰리나 넘버 포도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파이브에 비할 게 못 된다.

파이브를 연기한 배우는 에이단 라이언 갤러거. 얼굴 전체를 가득 채우는 이목구비, 그리고 이미 어른의 것만 같은 얼굴의 골격.

넘버 파이브를 뽑는 자리에 지각하는 바람에 맨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보았고,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첨. 오히려 그가 마지막에 등장 했던 것이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니었을까. 그의 앞에 있던 수많은 배우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는 소리였을테니, 이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는지는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솔직히 말해보렴, 에이단, 너 술 마셔본 적 있지? 아니, 너 사실 애 아니지?! 연기를 어쩜 이렇게 하니. 네게 딱 맞는 별명이 있지, <샤넬 넘버 파이브(Chanel No. 5)>.


파이브의 캐릭터는 독특하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떠한 캐릭터보다 연기하기가 더럽게(?) 까다롭다. 실제로는 58살인데, 자신의 시공간 계산 착오로 13살짜리 소년이 되어버린다. 물론 정신은 그대로 58살. 여기에 종말 이후의 시간으로 넘어간 덕에 다시 돌아오지도 못한 채 아무도 없는 지구에서 마네킹 돌로레스와 4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는 설정 추가. 플러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살인청부업자였다는 것 추가. 아, 또 여기에 엄청난 똑똑이라는 것까지 추가.

실제로 에이단은 03년생이고, 19년 시즌 1을 찍을 당시, 17살(한국 나이)였고, 올해 시즌 2에선 18살이었다. 또래보다 큰 편이 아닌 건 확실. 그러나 이런 연기력이라면 키가 무슨 상관이겠냐며. 어쨌든 어리지만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하는 것에는 이미 고수.

파이브가 끌어안고 있는 게 그의 영혼의 단짝 돌로레스다. 스토리 중간에 돌로레스를 보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파이브라는 캐릭터의 성장을 대놓고(?) 보여주는 장치였다. 어쨌든 돌로레스는 나름 귀여웠던 컨셉.


어찌되었든, 요약하자면 시즌 1은 애들 모으기, 시즌 2는 성장하기. 넘버 원은 발암캐, 감독님은 파이브만 좋아해, 나도 파이브가 제일 좋아.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비슷하게 느꼈을거라 생각하고, 시즌 2 마지막 장면에서 시즌 3가 이미 예정되어있음을 알 수 있단 것도 봤을테다. 어른만큼은 아니지만 어른 가까이 성장한 엄브렐러 아카데미 친구들 앞엔 자신들의 데칼코마니와의 대결이 남았는데, 어쩌면 이게 우리 친구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을 한다. 나 자신과의 싸움, 그것이야 말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한 단계 더 나아가는 필수 코스 아니겠는가.

19년에 시즌 1, 20년에 시즌 2라면, 21년에 시즌 3가 아닐까. 제발 어서 나와달라, 시즌 3. 어른다운 어른으로, 더 강력한 영웅으로 변모하는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얼른 보고싶다. 추가로, 아버지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지, 속시원한 답변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외계인인 그가, 왜 그렇게 세계의 종말을 막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뿌렸던 빛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게 43명의 아이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43명의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고 왜 그들은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없었는지, 등등. 불친절한 감독님께서 시즌 3에는 조금만 더 친절해지시기를, 바래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탐났던 능력은 넘버 쓰리가 가졌던 소문.

-소문을 들었는데, 여기가 읽기 편한 글 맛집이라면서?


엄브렐러 아카데미 입소를 강력 추천하며, 나의 귀여운 영웅들과 함께 꿈나라로 가련다.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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