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자신의 것을 쉽게 양보해버리는 아이들을 보면 왜인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짠해져 온다. 그리고 그걸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통탄스럽다. 네가 첫 째니까, 혹은 네가 동생이니까, 최악은 네가 착하니까, 양보하자. 나는 그런 식의 멘트를 듣고 있자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양보했던 그 무언가(이를테면 장난감이나 색연필 같은)를 도로 빼앗아 그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왜 타고난 것으로 자꾸 양보를 하란 걸까, 내가 첫 째, 혹은 동생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보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주면 안되는 걸까.
어린 아이라서 잘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리기 때문에 그 앞에선 더욱 말조심, 행동조심을 해야하는 법이다. 괜히 옛말에 아이 보는 데는 찬 물도 못 마신다는 말이 생겼을까. 양보하면 착한 것, 내 것을 다 잃고도 웃으면 착한 것, 그렇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그런 식의 교육은 자녀를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리기 딱 좋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바로 그 착한 아이였다.

사실 나는 타고난 성향 자체가 사람을 좋아하고 잘 웃는 그런 아이였다. 어쩌면 약간의 관종(?)끼도 있었지 싶다. 어릴 때 밖을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모두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주 안달이었다고 했다.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다니, 이 무슨. 지금의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뭐, 그 땐 그랬다고 한다. 난 내가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린 것이 우리 엄마나 아빠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당신들께선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공평했다면 공평했지, 네가 누나니까 무조건 양보해라, 라던가, 양보한 것에 대해 착한 아이, 라고 칭찬한 적도 없었다. 뭐, 양보랄 것도 없었다, 어릴 적엔 부족함 없이 컸고(아니, 그렇다고 금수저였단 건 아니다) 항상 내 것과 동생 것은 명확히 구분 되어있었다.
나의 착한 아이 가면은 학교를 가면서부터 생겼던 것 같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5학년을 지나면서부터. 아마도 그건 사회에 섞이기 위한 내 나름의 몸부림이었지 싶다. 저학년 때는 반장도 몇 차례 했었고, 주변 어른들은 나를 뭐든 잘하는 아이,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물론 내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고, 기억하기도 쉬웠다)였고, 4학년이 되었을 때는 담임선생님이 나를 편애한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약간의 관종이었어서, 그런 관심이 아주 싫지는 않았다. 어딜 가나 주목 받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았고, 뭐든 잘하는 아이라는 타이틀도 마음에 들었다. 그 땐 실제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뭐든 잘 했었다. 자랑이 아니라, 그 땐 진짜 그냥 그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누구나 잘하는 법이고, 나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빠른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약간의 따돌림을 당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은따 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에 유명한(?) 아이였기에, 아이들은 날 대놓고 따돌릴 순 없었고, 내가 없을 때 내 의자를 밟거나, 내 지우개를 가져가서는 자기 것이라고 우기거나, 하는 등의 아주 치사하고 은근한 따돌림이었다. 나는 사회화가 덜 된 관종 공주님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그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을테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겠다, 싶기도 하다. 어릴 땐 지금보다 훨씬 상상을 많이 했던 아이였고, 심지어는 현실 속으로 상상을 끌어오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학기 초 어울렸던 친구들도 문제였는데, 나와는 성향이 전혀 다른 아이들이었다. 걔네들은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애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왠 범생이 같은 애가 껴있으니, 얜 뭔가 싶기도 했겠지. 5학년의 첫 단추가 그렇게 엉망으로 끼워졌고, 그 때는 담임 선생님마저 나를 편애했던 선생님도 아니었던 터라, 나는 그렇게 호되게(?) 첫 사회화를 겪었다.
그리고 올라간 6학년,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 무리와는 다른 그룹의 아이들이었고, 나는 순조롭게 가면을 쓴 채, 초등학교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을 보냈다. 모두가 나를 착한 아이라고 불렀고, 그 때는 처음으로 단짝도 생겼으며, 함께 노는 그룹도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쭈욱, 학창시절을 보냈다. 나는 항상 잘 웃는 아이였고, 착한 아이였으며, 순한 아이였다. 물론, 내가 그렇다고 원래가 우울하고, 못돼먹고, 다루기 힘든 타입이란 소린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라하면 늘 양면이 존재하는 법이지 않는가. 문제는 그것이었다, 내겐 양면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

우리 부모님은 내게 착한 아이가 되라고 한 적이 없다. 무조건 양보만 하라고 한 적도 없다, 오히려 우리 엄만 내게 늘 욕심이 없냐며 화를 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내가 속했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최대한 순응하고, 튀지 않고, 착하게 있는 것. 설령 내 것을 빼앗기더라도 괜찮다며 웃는 것.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내게서 잘못을 찾아 스스로를 탓하는 것. 그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모르겠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 때 당시의 내가 선택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 스스로 착한 아이 가면을 쓰는 것.
아주 다행스러운 건 대학교를 가면서부터 천천히 그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좋은 사람들과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그려나갈 수 있게 되면서 그렇게 나의 양면을 드러낸 채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들은 각종 심리학 수업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 수업들은 내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는데, 착한 아이 증후군 역시 그 때 처음 접했던 용어였다. 그 단어를 처음 듣고,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탁! 하고 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때부터는 내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익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돌리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물음에 늘 대학생 때를 짚는다. 가면을 벗은 나로 돌아오게 했던 시절 말이다.
조금 슬픈 건, 어릴 때의 나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꼬꼬마 당시의 나는 두려운 것이 없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못해 그 속에 살았던 아이었다. 해맑고 반짝반짝 빛났으며,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가득했다. 가면을 쓰면서부터 나는 두려운 것이 생겼고, 상상보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란 것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 까만 유성 매직과도 같은 것이라, 한 번 마음에 칠해지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인간관계가 제일 간절하면서도 어렵고,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으면서도 늘 두렵다. 내가 노출되는 사회의 범위가 넓어질 수록 궁금하면서도 무섭다,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 사람이 나의 착한 아이 증후군을 다시 발동시키는 건 아닐까.
최근, 나의 착한 아이 증후군을 다시 발동 시킨 사람이 한 명 나타났는데, 천만 다행인 건 얼굴을 본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아마 꽤 오랜 시간을 얼굴을 보지 못한 채로 지내게 될 것이며, 부딪힐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 그 사람의 잘못이었는데도, 나는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내 잘못으로 돌리고 있었다. 소름. 그 일이 있고나서 한동안 매우 우울했다. 나는 나름 내 위치에서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아주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직에 대한 고민까지 하고 있던 터라 그 우울감은 더 심했었다. 다행히 금세 상황을 깨닫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런 사람과 함께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불행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그런 사람과 맞서 싸우지 못하나, 라고 또 다시 자책을 하려다가, 이내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 라는 명언(?)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치 이건 금연과도 같다, 평생을 참는 담배마냥, 착한 아이 증후군도 잊을 만하면 고개를 든다. 한 번이라도 걸리면 평생을 그렇게 잘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제발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무조건 착하기를, 무턱대고 양보하기를 강요하지 말라는 거다. 착하다고만 칭찬하지 말고, 제 것을 잘 찾는 것, 잘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칭찬해주었으면. 아무리 그들만의 작은 세계라도, 사회는 사회인 법. 부디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는 법에 대해 알려주길. 나를 지키며 양보하고, 내 것을 쥐고도 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면. 아직까지도 착한 아이 증후군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서른이 홀짝 넘은 어른이 안타까움에 하는 말이다.
지금도 나는 내게 착하다고 하면 기분이 묘하다. 착하다는 그 말이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막상 그렇다고 나한테 은근 성격있다고 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기분이 좀 그렇더라. (어쩌라는 걸까, 나 자신) 그래서 요즘은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참 좋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그건 그냥 취향과도 같은 말이라, 마냥 착할 필요 없는, 내가 착한 가면을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같아서, 그렇다.
우리 모두 착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 되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그 이전에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
간만의 기나긴 끄적임에 함께 해주어 무한 감사를 표하는 바, 이번에야 말로 꼭 책을 한 권 더 내어보겠다며 굳은 다짐을 해본다.
오늘도 이만, 통통통.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의 특징: 언제나 밝고 명랑하다 / 작은 것도 양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사과한다 / 규칙을 지키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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