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우리 사회에 인류애가 상실되어 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아마도 내가 그걸 자각하기 시작한 건, 페미니즘 문제가 한창 대두되기 시작할 때. 그렇다고 내가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다던가, 성차별에 대해 민감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남성과 여성, 딱 이분법적으로만 세상을 나눠 생각하는, 남성 혐오 혹은 여성 혐오, 각종 혐오주의자들이 수면 위로 너무 당당히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듯, 싫어하는 것도 자유인 건 명확하나, 늘 문제가 되는 건, 그걸 타인에게도 함께하길 강요하는 이들이다. 혹은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이들은 자신의 불호를 한껏 드러내며 그것이 마치 세상의 진리인 양 말한다. 그리고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빠르게 인류애를 잃어가는 중이다.
뮤지컬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라는 곡에서는 태초의 인간이 두 쌍의 머리와 팔, 다리를 가졌다고 노래한다. 남자와 남자가 붙어있던 햇님의 아이, 여자와 여자가 붙어있던 땅의 아이, 그리고 여자와 남자가 붙어있던 달님의 아이. 하지만 신들은 나날이 똑똑해지는 인간들의 저항이 두려웠고, 결국엔 제우스가 벼락을 내리쳐 인간들의 몸을 반쪽으로 갈라,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 흔적이 우리의 배꼽이라는데, 당연히 헤드윅을 쓴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나는 그 스토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인류애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흑백논리다. 삶에 있어서 무언가를 장담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나 그것이 가치관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세상엔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그들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생김새를 가졌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만도 벅찬데. 어떤 것도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 인간은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라, 스스로에 대해서 아는 것도 평생을 살면서 다 못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타인을 정의 내리는 일은? 비교적 쉽게 느껴지겠지만, 그건 그저 추측에 불과할 뿐,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특히나 타고난 것을 가지고 이건 틀렸고, 저건 옳아, 요건 나쁘고, 죠건 좋다, 라고 하는 건 정말이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나 자신도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을 가지고 분류되어버린다면 그것만큼 어이없는 일이 또 어디있을까.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지능을 검사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데, 나는 가끔 그것조차도 매우 소름끼친다는 생각을 한다. 타고난 지능을 가지고 아이들을 구분하여 교육한다, 물론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긴 하지만, 내가 놀랐던 건 아이의 지능에 대한 부모들의 태도였다. 태어난 지 4~5년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동안 무언가를 학습했다면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온전히 그건 날 때 가지고 태어난 것일텐데, 지능 점수가 낮으면 그것이 곧 그 아이의 무능(?), 즉 못난 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무서웠다. 그 어린 아이는 선택하지 않았고, 선택한 적도 없었다. 그저 한 일이라곤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이 전부인데, 세상이 그 아이를 못났다고 나오자마자 낙인을 찍는 것 아닌가.

피부색이며, 성별, 나아가 성적 취향까지도. 그저 타고 태어난 것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모두 다른 눈코입을 가졌듯, 그냥 그런 것일 뿐. 근데 왜 우리는 자꾸 편을 나누고, 나눠서 다투고, 서로 미워하며 아프게 하는 것일까. 사랑꾼으로 유명한 션이 그런 말을 했다,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싸울 시간이 어디있겠느냐고. 조금 웃기지만, 나는 종종 누군가에게 분노의 감정이 차오를 때, 그의 말을 곱씹곤 한다. 그러면 조금 욱 했던 감정이 누그러드는 것을 느낀다. 인류는 서로 사랑해야한다. 그래야 도태되지 않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단순히 연인의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 전인류적인 그런 사랑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는 저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어떤 큰 손이, 니들끼리 적당히 좀 싸워대라고, 이제는 좀 뭉쳐보라며, 부러 위기 상황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 그래,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그 자그마한 바이러스에도 우리는 무너진다. 디즈니 동화 같은 말 같겠지만, 결국 모든 걸 이겨내는 건 사랑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엄청난 일이다. 상대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굳게 믿어왔던 어떤 일조차도 단박에 해낼 수 있게 만든다. 반대로 미워하는 감정은 내가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도 절대 하지 않게끔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다. 상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사실 그렇다, 뭐든 하는 게 힘들지, 하지 않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혐오라는 감정은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게 되면서 도태되는 것이다. 상대를 위해, 서로의 관계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 점점 소멸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 혼자 살거야, 라고 괜히 삐뚤게 말하지 않아주었으면. 이 세상 누구도 혼자 살 수 는 없다. 심지어 저 깊은 산중에 사시는 자연인 분들도 혼자 사시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도시도 내려오시고, 가끔 가족들도 만나고, 방송 출연도 하신다.

무작정 모두를 사랑하라는 건 아니다. 우린 신선도 아니고, 도인도 아니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타인의 타고난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분류하여, 미워하지 말자는 것, 그뿐이다.
-여자들은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거지
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하면, 세상의 절반을 이해 못하겠다는 거랑 똑같은 말인 셈이다. 그 말 한마디를 뱉는 순간, 세상의 절반을 적으로 두겠다는 것. (물론 이건 조금 격한 표현) 그냥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있으면,
-난 그 사람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
라고 말하자. 적어도 그러면 한 사람만 이해 할 수 없는거니까.
쉽진 않다는 걸 안다. 눈에 가장 빨리 보이는 것들이니까. 타고난 것으로 가르는 게 가장 쉽다. 하지만 알다시피 쉬운 것은 우리를 갉아먹는다. 당장엔 아주 자극적으로 확 와닿겠지만, 결국 그게 독이 되는 법이다. 세상 모든 남자가 같을 수 없고, 세상 모든 여자가 같을 수 없다. 그러니까 자꾸 둘로 나누지 말자. 나눌 수도 없는 걸 자꾸 나누겠다고 하면 꼭 문제가 생긴다. 내가 싫은 건, 상대한테도 하지 말자, 내가 싫은 걸 같이 싫어하자고 할 게 아니라. 사실 그냥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나가는 것이 진리겠다마는, 앞서 말했듯 우린 보통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노력이라도 해보자, 이거다.
코딱지만한 원룸에서 졸린 눈을 꿈뻑이며 인류애를 외치고 있는 게 웃기긴 하지만, 솔직히 좀 간절하다. 인터넷 속 기사며 영상들의 댓글들을 읽기가 겁난다.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 제발, 우리 서로 사랑하자. 짧은 인생, 서로 미워하다가 끝내지 말고, 행복하잔 말이다.
오늘도 역시나 아무말 대잔치,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께는 늘 그렇듯 무한한 감사와 사랑.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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