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왜요? 제가 빌보드 핫백 1위 팬처럼 생겼나요? 맞아요.

by 김매디 2020. 9. 10.
반응형

BTS,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그 전엔 우주대폭발 그룹(이름 처럼 폭발해서 이젠 소멸 직전인 그 그룹)의 오랜 팬이었다. 이름만 놓고보면 늘 이길 것만 같았던 그 녀석이 스스로가 진짜 개츠비가 된 줄 알고 범죄자가 되는 바람에, 그룹명마저도 절대 입에 올려선 안되는 볼드모트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도 나는 88년 8월 18일생인 그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완전체가 아닌 솔로로의 컴백일테다.

가끔씩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슬쩍 들어가 빨강 하트를 투척한다. 괜히 전남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너낌... (응, 그거 아니야)


우주대폭발로 상심해있을 무렵, 들을 것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똑똑한 우리집 AI 집사(갈기 없는 사자 캐릭터가 귀엽게 매달려 있다)가 추천한 음악이 방탄소년단의 ‘Make it right’ 이었다. 그 노래가 그들의 노래라는 건, 내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뒤이어 나온 노래는 ‘소우주’. 이런, 그 곡마저도 제대로 취저.
그리고 두 곡 모두 가장 최근 앨범(‘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한창 활동 하던 때였다)의 수록곡들이라는 것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게 수록곡이면 타이틀은 얼마나 더 좋은거지?! 그렇게 나는 늦덕의 길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내게 방탄소년단의 이미지는 그냥 그랬다. 얼굴이 너무 애기애기한데, 자꾸 눈에 검은 칠을 하고, 곡 컨셉과는 상관없는 무대의상에, 아직 순둥이 소년인 아이들에게 너무 멋진 척, 으른인 척, 섹시하고 강한 척, 해야하는 너낌의 곡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데뷔 초반, 그 아이들의 당혹스러운 컨셉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방시혁은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모험을 할 수 있는 초창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일단 해보자? 모 아니면 도?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세련된 수트를 입고, 공식석상에서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원어민 못지 않은 영어로 연설을 하는 김남준(RM)이, 그 시절엔 마이콜 머리를 한 채, 절대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썬글라스를 끼고 ‘No more dream’을 외쳤다. 세상에. 최근 아미 멤버십을 두 번째로 연장했다지만, 그 때의 컨셉은 지금도 납득(?)이 안된다.

내가 방탄소년단을 ‘방시혁이 탄생시킨 소년단’이라고 알고 있을 시절이다. 그래, 무엇이든 지금 이순간이 가장 중요하지. 암, 그렇고 말고! 남준아, 그치?!


여튼 그 뒤로 방탄소년단의 모든 앨범을 출퇴근길에 듣기 시작했고, 뮤직비디오를 하나씩 섭렵해 나갔으며, V앱을 통해 달방(달려라 방탄: 방탄소년단들만의 예능컨텐츠)을 정주행, 유튜브의 방탄TV까지 하나씩 클리어하며, 위버스에까지 가입, 마침내 아미 멤버십을 결제하기에 이르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는 보라해(海)의 심해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를 알게 된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9와 4분의 3 승강장을 모르는 너희는 머글이로구나. 그래, 방탄소년단의 매력을 아직 알지 못하는 너희는 행복의 절반을 모르는 게야.

굳이 내가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지는 크게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쓰고 싶으니 쓴다. (내맘이다) 김태형(V, 뷔, 브이 아님 주의)을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뮤직비디오에서 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지하철에서 아무 생각없이 틀었던 그 영상, 심지어 첫장면이었다. 새파란 머리에 분홍 의상이 어울릴 수 있는 조합이던가. 아니, 절대 아니지, 그건 김태형이었기 때문에 소화해냈던 것이 분명하다. 플러스, 초단위로 달라지는 그의 몸짓과 표정은 ‘이게 마 찐 연예인이다!’라고 부르짖는 듯했다. 그리고 곧 다다른 그의 파트에서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저음.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내 고막을 뚫고 들어와 심장을 바르르 울렸다. 아, 뭐, 주책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 그건 그냥 갓난아이가 물을 처음 접한 순간, 어머니의 양수에 있을 때 처럼 자연스레 수영을 해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누군가 그랬다더라, 김태형은 컴백할 때마다 에스프레소를 한 샷씩 추가해서 나온다고. 정답. 덕분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달방은 신의 한수였다. 유튜브 방탄TV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짜임새가 있는 달방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고백하건데, 달방 덕에 나는 방탄소년단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걸 보고 있으면, 그들의 본업이 가수, 그것도 아이돌이라는 걸 자꾸 잊는다. (물론 절대 그들의 음악이나 퍼포먼스가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같은 반 남자애들 같은 느낌...이랄까. 음, 아니, 한 동네 살며 가끔 오다가다 얼굴 마주하는 그런 느낌... 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물론 그들에겐 분명 방송에서 다 보여주지 않는 인간 김석진, 민윤기, 김남준,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의 모습이 있겠다만, 그래도 달방에서 어느정도까지는 오픈이 되었지 싶다. 사람 분석하기 좋아하는 인프제인 나에게, 달방은 그들에게 더 빠져들게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엔 지오디를 그렇게 좋아했더랬다. 생방만 안따라다녔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었다. 모든 물건을 하늘색(당시 지오디의 상징색이 하늘색이었다)으로 깔맞춤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케줄을 미리 다이어리에 모두 적어놓고 라디오를 듣고, 방송을 챙겨봤다. 오빠들이 나온다는 잡지는 몽땅 다 사서 나온 부분만 곱게 오려 투명 파일에 꽂아두었고, 컴퓨터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만들어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500원씩 받고 팔기도 했다. (당연히 이러면 안된다, 학교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는 불법)

다 큰 성인이 되어, 방탄소년단을 알게 되기 전, 지오디 콘서트가 있었는데, 뭔 생각이었던지, 거길 혼자 갔다. 혼자 왔다는 이유로 자리 바꿔주다가 빈정상할 뻔 했지만, 첫 혼콘 치고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아주 미묘한 감정이 솟아올라왔는데,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한 것 같아 속에서 무언가 울컥했다. 더불어 영원히 나이들 것 같지 않던 나의 오빠들이, 나이 먹은 나의 ‘오빠들’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도 훗날 나와 같은 감정을 꼭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로, 그들이 오래오래 활동해주기를.

지오디 콘서트, 그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언젠간 아미밤을 들고 저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망할 코로나)


지오디를 거쳐 우주대폭발, 그리고 방탄소년단까지. 내 취향은 참으로 보편적이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뭔들 어떠하리, 그들이 칙칙한 내 삶에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인데, 보편이건 그렇지 않건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래, 그므시라꼬. 그저 아름다운 일곱 청년들과 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우리나라 가수 최초로 빌보드 1위, 그것도 2주 연속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찍어내고 있는 걸 동시간대에 그들과 함께 지켜볼 수 있다니. 소름돋는 일이다. 오래오래 지금처럼 활동해주었으면, 옆집 남동생들 같은 느낌으로 계속 그렇게 순수한 스타로 남아주었으면, 그냥 내 욕심이지만 바래본다.

최애 멤버 김태형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그리고 연예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으로, 살포시 미뤄본다. 오늘의 주제에 모두 담기에는 끝없이 길어질 듯 하다. 이미 충분히 두서없었다, 늘 그렇듯. 그러므로 오늘도 이쯤에서 마무리. 당분간은 매일 글을 업로드 할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 기대... 할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다만, 누군가는 이 엉망진창 와장창 일기를 좋아해주었으면.

오늘도 이만, 통통통.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