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차에 실려 엄마와 함께 나의 코딱지만한 자취방으로 돌아오던 길, 문득 불안감이 밀려왔다. 사서 걱정하는 인프제이기에, 나는 내 미래가 요즘 부쩍 걱정스럽다.
남자애들이 군댈 가면 선임들이 했던 장난이 있다며 알려준 적이 있었다. 선임들은 대뜸 그런 말을 한다고 한다,
‘야, 눈 감아봐’
그래서 눈을 꾸욱 감으면 선임들은 낄낄 거리며,
‘그게 니 미래야, 새꺄’
라고 한다는. 전역날이 까마득하다는 소리겠지마는, 지금의 내겐 그 말이 자꾸 와닿는다. 캄캄한 나의 미래? 랄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나의 것을 하기 전까지는 평생 직장이 될거라 믿었던 곳에서 이젠 더이상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순진했던 내가 너무 쉽게 그곳에 내 청춘을 던져보겠다고 생각한 게 문제다. 역시 신은 쉬운 길은 그냥 내주지 않는다.
남들은 없애지 못해 안달인 직급을 만들어 붙이더니, 애매하게 부리려고 한다. 팀장이라는 직책도, 월급 인상도 없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쥐꼬리만한 월급에 코딱지 만큼 올려받고 팀장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할 교육도 안시켜 줄 거 아닌가.
발등에 불 떨어진 일을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아서, 내가 미리 해놓고 있었는데 뒤늦게 와서 업무 지시라고 하는 게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식이라 열이 터졌다. 심지어 그 방식대로라면 일을 두 번 해야하는 것. 됐고 그냥 내 방식대로 해서 전달했더니 고생했다며 고맙단다. 이럴거면 월급 더 줘.
지나친 아날로그식 업무처리를 효과적으로 만들자고 사내 메신저 사용을 제안했더니, 사람을 게으름뱅이를 만들고는 ‘엉덩이 좀 가볍게’라는 말까지 해댄다. 하하하. 심한 인대파열로 3개월 내내 절뚝이며 일한 사람한테 언제 낫냐는 식으로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갑작스럽게 신규 직원을 둘이나 채용해놓고는 회의 시간에 대뜸 쉬는 날 니들 중 한 명은 꼭 나와야겠다고 통보를 한다. 셋이 의논해보고 알려달라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내가 가서 모두 다 못나오겠다고 했더니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무조건 나와야 한다고 우긴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신규 직원들 흉을 내게 본다. 오마이갓.
좋은 곳인 줄 알았고, 실제로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전 직장보다 월급이 많이 줄었음에도 행복했다. 돈 대신 다른 것들에서 오는 만족감이 컸었다. 특히 함께 일하는 사람의 힘이 정말 컸는데, 나는 그게 여럿인 줄 알았다. 근데, 하나였다. 지금은 출산을 앞두고 육아휴직 중인 언니가 정말 커다란 방패였던 것이었다.
그래, 돌이켜보면 그렇다, 하루 중 9시간을 붙어있는다. 점심도 함께 먹는다. 자취를 한 뒤로는 부모님보다 오래 보는 사이였다. 정말 행복했던 건, 나름 잘 맞았단 것이었다. 입맛도 비슷했고, 성향마저도 같은 인프제라 말하지 않아도 통했다. 진짜 언니다운 언니였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웃으면서 거절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어떻게 하면 일을 키우지 않고 잘 처리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활화산 같은 인프제라면, 언니는 잔잔한 바다같은 인프제였다. 정말 보고 싶은 언니, 좋은 사람.

모든 사건(?)들은 코로나가 터지면서 하나씩 시작되었다. 코로나 자체도 문제였지만, 코로나를 대처하는 방식들이 엉망진창이었고, 그 안에서 생고생하는 건 언니와 나였다. 당시 언니는 배가 많이 불러 있던 상태였고, 나는 나대로 발목이 나가 한창 고생하던 때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업무는 과중되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결국 업무에 시달리던 언니는 병원에서 위험하단 진단을 받았고 인수인계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휴직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신규 직원을 뽑는 과정마저 토사구팽을 연상케 했고, 매너와 센스라고는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후임을 뽑는 채용공고를, 마감일 직전에 같은 팀원도 아닌 다른 직원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한다는 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여지껏 7년을 다닌 사람에게 하는 처사가 아주 황당무계 그 자체였다. 난 두려웠다, 7년차에게도 그렇게 하는데, 내겐 어떻겠는가.
여튼 그렇게 나는 서서히 이곳과 정을 뗐고, 최근에는 그야말로 정뚝떨. 더이상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굳이 찾자면, 3년이 지났기에 느낄 수 있는 익숙함?
하지만 나는 좀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많은 일을 하고 싶다. 계속 새로운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이 성공한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다. 그런데 이곳은 전진이 아닌 도태 중에 있다. 쓰잘데기 없는 수직형 전달구조는 물론이거니와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는 덤이다. 고이고 고인 물들은 더이상 흐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한땐 흐르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리고 그 익숙함에 속아 모든 걸 놓는 순간, 나도 정체되는 것이다. 흐름을 멈추고 고이기 시작하는 것이고 결국엔 썩게 되어 나중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평생 직장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여 평생을 감옥에 갇힌 것 마냥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다할 선택지가 없어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긴 그런 곳이었다. 도태되어 결국엔 썩어 문드러지는 곳.
어쨌든, 그렇게 평생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불안감이 엄습한다. 결국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좋은 차, 주말마다 쉬러가는 좋은 집(본가), 가끔 먹는 고급스럽고 맛난 요리들, 때때로 입을 수 있는 좋은 옷들, 이 모든 것들은 부모님 것이 아닌가. 나의 것은 없다. 나의 것은 코딱지만한 자취방과 은행 빚, 그리고 내 몸뚱아리. 조금 더 양보해서 나의 오래된 남자친구까지. 젠장. 나의 노후는 안전한건가.
멋진 울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래, 나도 언젠간 찾아내겠지, 그리고 잘 벌고 잘 모아서 내 집이란 걸 살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건 울엄마고, 나도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도 고개를 쳐든다. 존경하는 울엄마.
불안한 나의 미래를 응원하며, 나와 같은 모든 청춘들과 치어스. 우리 모두 언젠간 그런 때도 있었지, 라며 웃고 넘길 수 있기를.
오늘도 이만, 통통통.
'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이라는 나의 깊고 깊은 바다 (0) | 2023.04.14 |
---|---|
갑분 애교심 (0) | 2021.05.07 |
다시 쓰는 이력서 (0) | 2021.04.27 |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0) | 2021.04.27 |
버스, 출근길 그리고 행복한 나 (0) | 2021.04.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