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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매디(마이 매디 다이어리)

갑분 애교심

by 김매디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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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학교 안에 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다정다감한(?) 이름이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곳이었는데, 최근 동네서 그 이름과 똑같은 상호명을 가진 분식집을 발견했더랬다. 기분이 묘했다.

학교와 집이 그리 가깝진 않은 터라, 졸업한 후로 지금껏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괜히 그 분식집 이름이 더 와닿았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곳을 그렇게 애용하거나 좋아라하진 않았다. 딱히 맛이 엄청 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서비스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가끔, 어쩔 수 없이 몇 번 먹은 것이 전부다. 모르겠다, 단골 친구들에겐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 그곳은 학교 내 분식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치 대형 마트 안의 띵똥 코너 같은 느낌.

그럼에도 그곳은 괜히 묘한 애교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유가 뭘까. 가끔 생각나 먹으러 왔다가 자리가 없어도 별로 아쉽지 않았던 곳인데. 음, 아마도 우리 엄마도 그곳을 알 정도로 오래된 곳이라, 그런 기분이 드는 걸지도.

엄마는 처음엔 내가 이 학교에 붙었고, 들어갈 거라고 했을 때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워낙 엄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때문에 나는 당신보다 더 잘해서 더 좋은 곳을 가야한다고 믿고 계셨던 때였다. 여담이지만, 엄만 내게 입학 전에 재수를 추천했고, 일학년 땐 반수, 이학년 땐 편입을 이야기했었더랬다.

어쨌든, 엄마의 딸내미 대학교 바꿔보기 프로젝트가 성황리(?)에 실패한 후, 마음이 누그러진 뒤에 엄마가 고등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학교도 그곳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엄마 역시도 그 분식집을 알고 있고, 거기서 떡볶이를 먹어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고, 그런 말을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엔 왜인지 그 분식집에 대해 좀 더 이상한 애착 같은 것이 생겼다. 엄마와 나 사이에 시공간을 초월한 연결고리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만약 내가 엄마의 모교로 진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더 엄청난(?) 기분이었겠지? 특히나 같은 전공이었더라면, 운이 좋다면 같은 교수님에게 수업을 듣는 엄청난 일도 생겼을지 모른다. 그랬라면 내가 좀 더 나의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자주 찾아갔었을까.

최근 다녀온 부산, 한 카페에서 만난 귀여운 찻잔 세트.


사실 학교를 참으로 좋아라했고, 지금도 좋아라한다. 엄마와 달리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고, 시간을 돌리더라도 나는 분명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에 미련도 없다. 그래서 그 시절 또래 친구들 중 학교 욕을 하며 정작 아무 것도 안하는 애들을 보며 말은 안했지만 참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탈출하던가, 못하겠음 여기서라도 열심히 해야할텐데 그 애들은 무엇도 하지 않았더랬다. 아님 나처럼 학교를 좋아하던가.

그토록 좋아하는 곳을 졸업 후 자주 가지 못한 건, 상당한 거리가 한 몫을 했다. 한 번 가려면 크나큰 결심을 하고 가야하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턴 귀한 휴일을 그런 크나큰 일(?)에 쓰고 싶지 않아졌다. 그 근처에도 별 게 없어서 결국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조금 나와야 놀거리를 만날 수 있기에, 더더욱 의미가 사라져버렸다. 더군다나 나처럼 학교 자체만 좋아하는 애는, 가서도 만날 교수님도 없다. (사실 난 우리 교수님을 별로 안좋아했다, 아마 교수님도 그러셨겠지? 죄송해요 교수님. 순한 얼굴하고는 계속 뺀질거려서...)

어쨌든 아주 오랜만에 낯익은 분식집 이름을 발견해서 간만에 추억여행을 (물론 침대에 누워) 떠나보았다. 또 마음 속 저편 어딘가에서는 ‘한 번 가봐야지’ 라는 마음도 드는 데, 역시나 이젠 나이가 더 들어버린 내겐 정말 멀다. 그래도 언젠간 꼭 한 번은 가야지.

돌이켜보니, 우리 학교보다도 울엄마 학교를 더 자주 갔던 나였다. 차암나.
오늘도 이만,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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